[문화] ‘이광수 문학 사전’ 낸 한승옥 교수

    입력 : 2002.06.25 18:11

    “춘원의 소설은 빛나는 우리말 보고”

    한승옥 교수



    “유월은 열 여섯 살로는 퍽 졸자란 편이나 체격은 색시 꼴이
    났다.”(‘흙’)

    “버는 게 다 무어요? 있는 것두 깝살릴 사람이지.”(‘사랑’)

    춘원 이광수(1892~?)의 대표작 ‘흙’과 ‘사랑’에 나오는 구절이다.
    ‘졸자라다’는 ‘키나 신체 부분이 적게 자란다’란 뜻이며,
    ‘깝살리다’란 ‘재물을 흐지부지 다 없애다’는 의미다. 어느 것이나
    지금은 쓰이지 않아 ‘사어(死語)’가 됐지만, 국어사전에는 버젓이
    수록돼 있는 우리말들이다. 이처럼 이광수 문학은 아름다운 우리말의
    샘이자, 보물창고다.

    한승옥(韓承玉) 숭실대 국문과 교수가 고려대 출판부에서 펴낸 ‘이광수
    문학사전’은 이광수 문학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는 어휘와 문장
    용례를 찾아 깔끔히 정리하고 있다. 이 사전을 통해 이미 소멸되어
    버렸거나 잊혀져가는 고유어, 한자어, 방언, 속담, 관용어구 등 우리
    언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교수를 만났다.

    -책을 펴낸 동기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이광수 연구’를 준비하면서 한국 현대소설의
    효시가 되는 작품인 ‘무정’을 세밀히 분석할 기회가 있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 상징, 배경, 시대적 의미, 다른 작품과의 연관 등을 살피는
    작업이었다. 그러면서 “이광수를 극복하지 않고는 더 큰 문학을 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가 『민족을 위해 친일했다』는 말은
    단순한 변명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친일을 했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일제 말기에 ‘원효대사’(1942)를 썼다. 소설 속에서 신라어를 어원에
    따라 국어학적으로 풀어 쓰고 있는데 이는 민족어의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춘원은 대중 구원을 위해 파계한 원효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것 같다.”

    춘원의 소설 68편을 참고해서 만든 ‘이광수 문학 사전 ’.
    -사전까지 낼 정도로 이광수 문학이 중요한가.

    “그렇다. 이광수는 문장을 쉽게 쓰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분이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도, 초등학교만 나와도, 읽을 수 있다.
    역사소설을 봐도 정사는 물론, 야사와 민담까지 아우르고 있다.
    불교용어가 많이 나오지만,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쓰는 능력을 가졌다.
    그것은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가 요새 태어났다면 세계적인
    문호가 됐을 것이다. 요즘 작가들이 단명한 것은 공부를 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요즘 학생들은 이광수라면 무조건 싫어한다.
    80년대에는 친일파라고 싫어했는데, 90년에 들어와서는 아예 읽을
    생각조차 않는다. 대학 국문과에서도 문학사나 작가론에서 스쳐지나갈 뿐
    비중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

    -작업에 많은 시간과 노고가 들어갔을 텐데.

    “춘원의 소설 68편을 대상으로 작업했다. 그의 장·단편은 물론,
    친일소설 중 일부와 발굴안된 일본어소설까지 포함, 거의 전 작품을
    망라했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어휘를 일일히 체크해 컴퓨터에 입력한 뒤
    기존 국어사전, 불교사전, 고어사전, 백과사전 등을 참고해 작업했다.
    인명, 문화, 속담, 한자어, 순수 우리말 등 모두 7000 단어를 정리하는데
    5년이 걸렸다. 놀라운 사실은 국어사전에 이광수가 사용한 낯선 말들이
    대부분 실려있다는 것이다. 80%는 사전에 있다. 국어사전을 편찬한
    사람들이 이광수의 용어를 채록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광수가 사용한 어휘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잘 썼다. 의성어만 들어가면 묘사가 절로
    된다. 재빠른 동작으로 가볍게 움직인다는 뜻의 ‘발락발락하다’
    ‘발랑발랑하다’라든가, ‘들먹들먹’ ‘들석들석’, ‘들쑹날쑹’
    ‘들편들편’ 같이 모음과 자음만 바꿔 동작이나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묘사해 내는 솜씨가 절묘하다. 우리 고유어의 쓰임도 풍부하게 찾을 수
    있는데, 특히 ‘일설 춘향전’에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많다. 요즘
    신인작가들 중에는 손끝으로 쓰는 감각적인 작가들이 많다. 이상한
    번역체도 많이 사용하는데, 작가라면 우리말을 제대로 익혀 폭넓고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한다.”

    -한 작가의 문학사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작가들의 어휘사전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문학사전이 나온 것은 처음
    아닌가 생각된다. 김유정 채만식 이문구의 어휘사전이 있고, ‘토지
    사전’이 있다. 이런 기초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광수는
    고향이 평북 정주지만, 그의 언어는 고향 토속어보다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표준어가 대부분이다. 요즘 작가들 사이에 방언을 쓰는 게 유행인
    것 같은데 토속어를 살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쓰는 표준말을
    바로잡고 정확히 구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춘원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필요하고 보는데.

    “친일 여부를 앞에 놓지 말고 문학 자체를 봐야 한다. 이광수의
    복합적인 면, 인간적인 점을 조명해야 한다. 이광수처럼 드라마틱한
    사람도 없다. 그의 시대로 들어가서 장단점을 재평가해야 한다.
    ‘무정’이 현대소설의 효시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이다.
    춘원은 장편을 주로 썼는데, 작가는 본래 장편소설에서 역량이 드러나는
    법이다. 기회가 닿으면 제대로 된 이광수 평전을 쓰고 싶다. 이제는
    이광수 문학상이 나올 때도 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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