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성밖에서/조지 R.R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입력 : 2002.07.12 18:19

      체스놀이 보는 듯 宮廷의 암투 그려





      ‘얼음과 불의 노래’(조지 R.R 마틴·은행나무 출판사)는 ‘반지의 제왕
      이후 최고의 판타지’라고 불린다. 많은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다.
      왕좌를 둘러싼 음모와 전쟁을 다루고 있으며, 가상의 왕국이라는 것만
      빼면 혈연과 봉신 관계가 복잡한 유럽의 왕권 전쟁을 닮은 이야기다.
      ‘반지’가 신화 속에서 걸어 나왔다면 ‘얼음과 불의 노래’는 역사책,
      그것도 흥미진진한 왕정 야사에서 걸어 나온 물건이다. 그러니 ‘반지
      이후 최고’를 ‘반지와 동류’라 생각하고 또 하나의 ‘반지’를
      기대하며 이 책을 펼쳐드는 것은 배신감 느끼기 좋은 오해다.

      현재까지 이 책이 보여주는 최대의 미덕은 궁정 암투물의 드라마적인
      재미다. 마법과 환상의 세계는 아직 조연에 머물러 있다. 적절하게 자기
      역할을 따먹는 영리한 조연이기는 하지만.

      대하사극답게도 무수한 인물들이 나오며, 연대기가 아닌 열전형의 구성에
      가깝기 때문에 음모와 투쟁의 밀도가 높은 만큼 사건의 진행은 느리다.
      정작 놀라운 것은 작가가 마치 ‘신’처럼 이 모든 인물들에게 냉혹할
      정도로 공평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군상들 중에 작가의
      노골적인 편애를 받는 인물을 골라내기는 쉽지 않다. 영리한 인물에게는
      신체의 결함을, 숭고한 인물에게는 또 다른 부덕을, 심지어 꽤 호감을
      얻은 인물에게 갑작스럽고도 과감한 죽음의 퇴장을 안겨주는 등 모든
      인물을 장기 말처럼 다룬다. 말이라고 해서 평면적인 ‘도구’로
      전락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각자 장기판 위에서 살아남고
      승리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인간들이다.

      이 책이 주는 재미는 ‘스토리상 왕이 될 것이 분명한 인물’에 업혀서
      그의 승리를 기다리며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도, 몇 명의
      히어로를 통해 나름의 난세 처세술을 읽는 재미와도 거리가 있다. 차라리
      격전이 벌어지는 장기판을 구경하는 재미에 가깝다.

      대체 이 장기판의 끝에는 어떤 결말이 준비되어 있을까? 2부가 번역된 지
      한참이 지났고 미국에서는 3부가 나온 지도 꽤 지났는데, 3부 번역이
      늦어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지연·소설가 mars.murimpia.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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