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찬사''를 벗겨낸 이순신의 인간적 ''맨얼굴''

    입력 : 2004.07.09 17:05 | 수정 : 2004.07.09 17:08


    불멸의 이순신/ 김탁환 장편소설/ 황금가지

    김탁환은“급진 개혁 운동을 하다가 고초를 겪은 할아버지를 둔 영민한 소년 이순신이 어떻게 젊은 날의 고뇌와 방황을 거쳐 세상으로 나갔는가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이순신은 위기의 시절마다 거명되는 전쟁영웅이다. 그러나 정작 끈질긴 인내와 신중함은 어디서 왔으며 그가 진정 무엇을 위해 모진 난관을 헤쳐 승리를 쟁취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김탁환이 소설로 재현한 이순신은 역사 교과서에 나옴 직한 거창한 ‘찬사’의 껍질을 벗겨냈다. 기존의 이순신에 관한 소설이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40~50대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면, 이 작품은 세상에 눈을 뜨고 뜻을 세워가던 10~20대 젊은 시절부터 그의 인간적 ‘맨얼굴’을 복원하고 있다. 작가는 기존 이순신의 ‘얼굴’에 반기를 든다.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해 무관의 길로 나선 것은 32세 때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은 사십 줄을 넘겼을 때였다. 소설은 완성된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한 인간의 신념이 단련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순신이 신립, 이일, 원균 등 당대의 용장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싸웠던 것은 그의 성장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설의 앞부분에는 세상을 향한 반항을 내뿜고, 의(義)와 협(俠)을 고민하는 청년 이순신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원균과 목면산(남산) 골짜기를 누비며 친분을 나누고, 산골 가마에서 그릇을 구우며 젊은 울분을 삭이는 등 가상적인 장면도 설정했다. 우선 조선중기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라는 역사적 맥락에 이순신을 자리매김시킨다.

    이순신의 조부 이백록은 기묘사화 때 개혁을 주도한 조광조와 뜻을 같이하다 큰 고초를 당했다. 그로부터 가세가 기울어 결국 어머니 친정이 있는 충청도 아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순신의 나머지 형제들은 아버지를 따라 은둔의 길을 걸었지만, 이순신은 조부의 뜻을 따르면서도 문신의 길 대신 무신의 길을 선택한다. 사림파의 새로운 리더인 유성룡이 이순신을 후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작가는 이순신의 적은 원균이 아니라 왜 수군 장수였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부각시킨다. 김탁환은 작가의 말에서 “임진왜란을 바라본 구도는 조선 조정의 당파싸움 및 수군 내부의 쟁공과 반목 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정작 적이었던 왜군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를 두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은 조선 수군과 왜 수군의 대립 구도 대신 이순신 대 이순신을 모함하고 핍박한 장수와 대신들을 대립구도로 택한 춘원 이광수의 소설 ‘이순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구도에서는 조선과 왜군의 대립을 조선인 내부의 대립으로 치환시키려는 민족개조론의 발상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일본 수군이 어떻게 싸웠는지도 소설의 중요한 파트가 된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줄타기 외교를 펼쳤던 쓰시마 도주 소 요시토시, 한산도에서 이순신과 숙명의 대결을 펼친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톨릭 교도로 조선 침략의 맹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중심인물이다. 무협 소설을 연상할 정도로 칼과 표창이 난무하는 전투장면도 생생하게 재현된다.

    명필 한석봉,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 홍길동을 지은 혁명아 허균, 개혁적 사림파인 유성룡, 때를 기다리는 광해군 등 당대 인물이 재현된다. 여기에 불교 중흥을 꿈꾸는 승려 월인, 장사꾼 임천수, 도가적 삶을 구가한 남궁두, 도자기 굽는 일에 인생을 건 사기장 소은우 등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그렸다.

    작가는 “이순신은 칠년 전쟁 동안 언제나 전위(前衛)였다”며 “그 이전까지 어떤 장수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준비하고 싸웠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1998년 4권 분량으로 발표했던 소설을 완전히 뜯어고쳐 8권 분량의 대하역사소설로 개작했다. 1차로 3권이 나왔으며 나머지는 다음달까지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작가는 최근 몇 년 동안 이순신, 황진이, 광해군, 허균, 김만중, 실학파 등 조선시대 인물들을 소설로 재현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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