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의 3박자로 써내려간 북한 김정일 관찰기

  • 박해현기자

    입력 : 2004.08.27 19:00 | 수정 : 2004.08.27 19:01

    김정일과 왈츠를/올가 말리체바 지음/박정민·임을출 옮김/한울

    ‘김정일은 조선소에서 여러 개의 철모를 써보았으나 그의 대포알처럼 큰 머리에 맞는 것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모자를 쓰지 않은 채 공장을 시찰했다. 러시아와 북한 경호원들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공장 상공의 천장을 주시해야 했다. 그들은 만에 하나 천장에서 벽돌, 들보, 작은 철판들이 떨어질 경우 자신들의 머리를 기꺼이 내밀 각오가 되어 있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2년 8월 러시아 극동 방문 당시 5일간 밀착 취재했던 러시아 여기자의 기록이다. 그녀는 김정일을 두 차례나 단독 인터뷰했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공식 만찬 석상에서 김정일이 그녀에게 춤을 청했고, 둘이 왈츠를 함께 추었을 정도다. 또한 김은 여행 도중 수행 기자단 중에서 유독 그녀를 직접 찾아 단독 인터뷰 기회를 주었다는 것. 이런 김의 호의 덕분인지 그녀는 김정일을 가리켜 ‘힘과 유머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괜찮은 남자’라고 치켜세우면서, 근거리에서 들은 그의 발언과 행적을 충실하게 기록했다.

    ‘고르바초프 시절의 소연방 공산당은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러시아 인민은 어떻습니까? 제가 왜 열차로 여행을 하겠습니까? 저는 러시아인을 알고 싶고 러시아 정신을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중략) 왜 제가 한 시간 내내 하바로프스크의 성당에 서서 종소리를 들었는지 이해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러시아 민족의 심금에서 나오는 정교 신앙에 젖어들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저는 이미 그런 성당을 우리 수도 평양에 짓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녀는 김정일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김의 대답은 이랬다. “어린 시절에 잃은 어머니죠. 그녀는 혁명 전사였어요.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당신의 아들이 모든 일에서 잘되기를 바라셨죠. 그러나 오늘날의 나의 모습은 상상도 못하셨을 거예요. 나는 많은 점에서 그녀에게 감사해요.”

    김정일은 또 “만약 모스크바를 다시 방문하게 되면 반드시 러시아 여기자를 초대해 긴 비행시간 동안 그녀가 끝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하겠소”라며 항간에 떠도는 ‘고소공포증’ 설을 일축했다.
    또한 이 책에는 그 유명한 김정일의 식도락 풍경도 나온다. ‘김정일은 살로(돼지비계를 오븐에 구운 요리)를 맛보고 만족스러운 듯했다. 그는 고기 국물이 든 ‘뺄미니’(고기만두)를 두 접시나 비워냈다. 그는 저녁부터 포도주에 미리 절이고 접대 전에 끊인 기름에 튀긴 개구리 다리, 잘게 간 고기와 야채, 버섯과 함께 채워넣은 매운 닭요리를 맛보았다.’

    이 책은 김정일이 악수를 할 때 악력(握力)이 철판 압착기와 같았고, 정서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또한 그가 금연을 했기 때문에 북한 고위 군장성들이 줄줄이 담배를 끊었다는 사실도 전했다. ‘(애연가였던) 스탈린은 일흔세 살, 처칠은 아흔한 살까지 살았다. 김정일 역시 장수하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제 그는 담배까지 끊었으니 그들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모른다. 김정일에게는 다른 이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개성, 즉 선명히 드러나는 남성적인 카리스마가 있다.’

    김정일과 왈츠를 추는 듯한 기분으로 써내려간 김정일 관찰기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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