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은행이 ‘금융공룡’ 되기까지

    입력 : 2007.02.23 23:33

    금융제국 J.P. 모건
    론 처노 지음|강남규 옮김|플래닛|
    1권 820쪽, 2권 456쪽|1권 3만2000원, 2권 2만원

    20세기 초 미국의 중앙은행으로 통하던 모건 하우스의 설립자 존 피어폰트 모건. 플래닛 제공
    1907년 10월 21일 미국 월 가(街)는 구리광산 주가 대폭락을 신호탄으로 순식간에 패닉(恐慌) 상태에 빠져들었다. 뉴욕증시는 이미 봄부터 구리, 철광, 철도 종목을 중심으로 투기 광풍에 휩싸여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통화긴축 발언은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연쇄 뱅크런(예금인출사태)으로 일주일 새 은행과 신탁회사 8개가 무너졌다. 증권사 50곳이 파산 직전으로 내몰렸다. 그 절박한 위기에서 월 가의 뱅커들이 구조를 요청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도, 재무장관도 아니었다. JP모건 회장 존 피어폰트 모건이었다. 이 칠순의 노인은 월 가의 금융인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개인플레이를 금지시켰고 파산 직전의 영세은행들에 긴급자금을 수혈토록 했다. 정부에도 2500만 달러의 구제금융자금을 내놓도록 했다. 금융시장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책의 원제(原題)는 ‘모건 하우스’(The House of Morgan)다. 종가집 ‘JP모건’(일반은행)과 1935년 JP모건의 증권부문이 독립한 ‘모건 스탠리’, 그리고 런던법인 ‘모건 그렌펠’ 등 세 회사를 아우르는 모건 금융제국의 또 다른 이름이다. 모건 제국의 공식 출발은 1838년이다. 그 해 JP모건의 모체인 피바디 은행(런던상업은행)이 세워졌다. 그 후 모건 가문이 은행을 인수해 지금까지 170년 동안 JP모건은 세계 금융시장의 양대축인 뉴욕 ‘월가’와 런던 ‘더 시티’의 흥망(興亡)의 현장 한 가운데에 늘 서 있었다.

    저자는 모건 제국의 역사를 세 시기로 나눈다. ‘귀족자본가 시대’라 이름 붙인 1기(1838~1913년)는 모건 제국의 실질적 창업자 존 피어폰트 모건 1세가 활동했던 시기다. 이 기간 JP모건은 중앙은행 역할을 하면서 미국 근대산업의 뼈대를 세웠다. 200개 넘는 회사로 쪼개져있던 철도산업을 합병했고 에디슨의 회사를 인수해 제너럴 일렉트릭(GE)을 만들었다.

    2기(1913~1948년)는 아들 존 피어폰트 모건 2세의 시대다. 이 기간 JP모건은 미 정부의 외교정책 수립에 깊숙이 간여했고 거대 금융자본을 앞세워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첨병 노릇을 했다. 겉으론 ‘은행가의 신사도(紳士道)’를 외치면서 뒤로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일본, 이탈리아 정권에 돈을 빌려주고 막대한 이익을 챙긴 ‘두 얼굴의 금융브로커’이기도 했다.

    1948년 이후 3기는 JP모건에서 독립한 모건스탠리가 세계 투자은행 업계의 절대강자로 부상한 시기다. 전쟁이 끝나고 세계 금융시장은 새로운 변화에 직면한다. 은행 이상의 자본동원 능력을 가진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뮤추얼펀드, 연기금 같은 기관투자가들이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이 상황에서 ‘모건의 후예들’이 주목한 건 기업 인수합병 시장이었다. 그들은 1974년 세계에서 처음 적대적 인수합병 기법을 선보이면서 ‘월 가에서 가장 공격적인 사냥꾼’으로 변신한다.

    이 책은 ‘작고 예의 바른 투자은행’이 ‘거대한 금융공룡’으로 커 나가는 과정을 ‘정치와 금융의 공생관계’, ‘탐욕과 야망의 돈의 세계’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편의 대하소설로 엮어냈다. 그것은 20세기 금융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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