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본 그 중국인은 왜 미쳤던 것일까

    입력 : 2007.03.09 22:55

    중국인 후의 기이한 유럽 편력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 김복미 옮김 서해문집 | 240쪽 | 1만2000원

    1725년 10월 12일 프랑스 파리 근교 샤랑통 정신병원. 예수회 소속으로 중국 광저우 주재 프랑스 선교단의 대리인이던 피에르 드 고빌 신부가 이곳을 찾았을 때, 더러운 중국식 속바지와 셔츠를 입고 있는 마흔 살 남짓 중국인의 모습이 보였다. 다 해진 양말 사이로 드러난 발이 찢어진 슬리퍼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고빌 신부가 중국어로 말을 건네자 그 중국인, 필립 후(Hu)는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제가 왜 여기에 갇혀 있었던 건가요?”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 매혹적인 경험이다. 오직 1차 사료의 기록과 현지 답사만을 바탕으로 한 역사학자의 글이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는지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첫 장에서 수수께끼를 제시한 뒤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는 등 추리소설과 영화를 방불케 하는 기법이 등장한다. 하지만 저자의 상상력이 개입된 부분은 놀랍게도 마지막 단 10행뿐이다.

    ‘강희제’ ‘신의 아들’과 같은 책이 국내에서도 출간된 저자 조너선 스펜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사학자다. 우연한 기회에 예수회 신부 장-프랑수아 푸케에 대한 연구서를 읽다가 그와 중국인 필립 후 사이에 있었던 간략한 기록을 접하고, 후의 유럽 편력 복원에 나섰다. 영국·프랑스·바티칸의 문서보관소를 하나하나 뒤지고 광저우·파리·샤랑통 등을 면밀히 답사 추적했다. 그 결과 “족쇄가 채워진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마차 창문에 얼굴을 부딪힐 때마다 후는 거대한 돔이 있는 생 루이 성당 쪽을 바라봐야 했다”는 문장이 가능할 정도였다.

    1722년, 광저우에 파견됐던 푸케 신부는 중국의 위대한 고전들이 신의 섭리에 의해 씌어졌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책들을 유럽으로 가져가는 일에 착수했다. 원전의 편집과 번역에 도움을 얻기 위해 데려간 중국인이 필립 후였다. 후는 천한 신분이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교황을 만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항해가 시작되면서 후의 기행(奇行)이 푸케 신부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오른 음식을 마구 집어먹고 천사가 나타나는 환상을 보는가 하면, 프랑스에 도착해선 남의 말을 타고 도시를 질주하며 자기 옷을 거지에게 건네준다. 침대 매트리스를 떼어내 바닥에 깔고 자더니, 어머니가 돌아간 꿈을 꾸었다며 통곡하기도 한다. 파리 시내에서 여자들이 공공연히 활보하는 것에 놀라 북을 치며 거리를 행진하는 일도 있었다. 한자로 이렇게 쓰여진 깃발도 들고 있었다. ‘남녀분별(男女分別)’.

    ‘예측할 수 없고 난폭한’ 행동이 계속돼 도저히 함께 일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푸케 신부는 1723년 4월 후를 정신병원에 가둬 놓고 혼자서 로마로 떠났다. 후는 1725년 12월에 석방돼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기까지 2년 반 넘게 이 곳에 갇혀 있어야 했다. ‘중국인을 학대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푸케 신부는 변명을 위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고, 그것이 이 책의 자료가 됐다.

    과연 후는 정말 미쳤던 것일까? 저자는 결론을 내리지 않지만, 책을 읽는 우리는 너무나 이질적인 두 세계의 문화가 충돌하는 데서 오는 충격과 의사 소통의 단절이 바로 후의 ‘광기(狂氣)’의 원인이 됐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런 ‘광기’가 문명을 내세운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현실이다. 후가 정신병원에 갇힌 과정은 감금을 통해 소수자를 배제하고 사회체제를 유지하려는 집단적인 욕망의 단면이며, 그런 18세기의 시스템은 극복되지 않은 채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섬뜩한 요소로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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