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인도남자와 사랑에 빠지다

    입력 : 2007.04.06 22:34

    신여성, 길 위에 서다
    나혜석 등 지음 | 서경석·우미영 엮고 씀 | 호미 | 293쪽 | 1만1000원

    1932년 4월 23일 한 여성의 죽음은 조선의 신문과 잡지에 대서특필됐다. 그녀의 이름은 최영숙(崔英淑). 우리나라 최초로 스웨덴에 유학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죽은 그녀를 애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죽은 곳은 동대문 부인병원. 처녀로 알고 있었던 그녀는 임신한 몸이었고 상대가 유학시절 만난 인도 청년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녀의 힘든 8년간의 유학생활은 한갓 ‘연애사’로 전락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1931년 12월 최영숙이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 조선일보는 ‘조선 초유의 여류 경제학사 최영숙양, ‘서전’(스웨덴)에서 돌아온 최영숙양은 다섯 나라 말을 능통하는 재원’(1931년 12월 22일자)이라고 보도했다. 그녀는 귀국 직후 몇몇 잡지에 스웨덴 유학생활과 인도여행기 등을 썼다.

    “스웨덴 땅을 밟게 되었을 때에는 북극의 추위도 풀리기 시작하는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언어와 풍속도 전혀 다르고 아는 사람조차 없으니 어찌 외롭고 쓸쓸하지 않았으리까? 그래서 한 달 동안은 밤이나 낮이나 울기만 했답니다.”(‘삼천리’ 1932년 1월호)

    ▲거리를 활보하는 신여성의 모습을 그린‘별건곤’1927년 1월호의 삽화

    1922년 열여덟 나이로 유학길에 나섰던 그녀는 여주에서 태어난 평범한 여성이었다. 조선의 여성이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는 일은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04년까지 여성은 대낮에 길을 돌아다닐 수 없었고, 밤에 외출하더라도 반드시 장옷을 걸쳐야 했다.

    닫힌 문 밖으로 뛰쳐나가 남다른 도전에 나선 ‘신여성’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화가 나혜석은 1927년 부산에서 하얼빈을 거쳐 모스크바를 지나 베를린과 파리까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세계를 여행했다. 해방 후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허정숙은 미국으로 떠났고, 계몽운동가 박인덕은 5년 2개월간 세계 35개국의 흙을 밟았다. 바야흐로 ‘신여성의 시대’였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새로운 세계로 길을 떠났던 ‘신여성’의 글을 당시 여러 잡지 속에서 뽑아 묶고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처음 문밖을 나서 통학과 소풍(원족)을 떠나고, 수학여행과 국내기행을 하며, 유학과 세계여행으로 확대되는 신여성의 발자취를 순서에 따라 보여주는 방식으로 편집했다. 동요 ‘학교종’을 만든 김메리, 소설가 박화성, 무용가 최승희처럼 유명한 여성들의 글도 있지만, 김복희·정애·김옥선·이경자 같은 생몰 연대조차 확인되지 않는 여학생의 글도 함께 묶었다.

    근대문학을 전공한 두 엮은이는 이들의 글에 붙인 해설에서 논쟁을 유도하는 일방적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사실을 바탕으로 근대 여성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에게 복잡한 감정과 의문을 갖게 한다. 여성사(史)의 입장에서 일제강점기는 여성들이 차별과 구속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간 시기 아닌가? 그런 조건과 토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우리 역사에서 일제강점기는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평가해야 할 것인가? 2005년 출간된 ‘잃어버린 풍경 1920~40’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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