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와 배제, 두 얼굴의 日식민주의

    입력 : 2007.05.04 22:35

    생활속의 식민지주의

    미즈노 나오키·정근식 등 지음|정선태 옮김|산처럼|202쪽|1만2800원

    1940년 일제가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동화하기 위해 창씨개명을 단행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제가 1910년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조선인이 일본인식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을 금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창씨개명 이후에도 이름만 보면 그가 조선인 출신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서 일제의 동화정책 속에 숨겨진 ‘차별’을 발견할 수 있다. 1911년 10월 공포된 조선총독부령 124호 ‘조선인의 성명개칭에 관한 건’은 조선인들이 일본인으로 혼동하기 쉬운 이름으로 바꾸는 것을 금지했다. 당시는 같은 관리라 할지라도 일본인과 조선인은 급료와 여비 수당 등에서 차별이 있었다. 총독부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별하기 위해 이름으로 차이를 알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식민지지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차별하는 근거로서 이름의 ‘차이화’를 도모했던 것이다. 일본 교토대 미즈노 나오키 교수는 이 같은 창씨개명 사례를 통해 “일본의 식민지주의는 ‘동화와 배제’의 이중성으로 특징지어진다”고 평가한다.

    1941년 10월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조선 왕족들. 사진수집가 정성길씨 제공
    이 책은 지난 2002년 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생활 속의 식민지주의’라는 주제로 열린 공개강좌의 결과물이다. 미즈노 나오키, 고마고메 다카시(이상 교토대), 정근식(서울대), 마쓰다 요시로(효고교육대) 교수 등 한국과 일본의 학자 4명이 참여했다.

    정근식 교수는 일제가 신체 규율을 강조한 것에서 식민지 지배의 한 양상을 발견한다. 근대국가에서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군사력과 시장에서 요구하는 노동력을 담당할 신체가 필요하게 된다. 전통 시대의 ‘몸’이란 수양과 보전의 대상이었다면, 근대 이후 신체는 국가권력의 정밀한 검사대상이 되고 보다 좋은 신체와 건강이 훈련에 의해 육성된다는 ‘체육’이라는 개념이 들어선다.

    학교는 체조와 교련 등 교과를 통해 신체능력을 육성하고 규율화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일제는 1938년 전시동원체제로 전환하면서 조선에 ‘황국신민체조’를 제정했다. 조선에 들어온 스포츠와 체조들은 거의 모두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것이었지만, 황국신민체조만큼은 식민지 조선에서 역으로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다. 체력장제도는 일본 후생성의 발표보다 앞선 1939년 7월 경성(서울)에서 실시됐다. 1942년 일제는 건민(健民)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강철같은 신체는 흥아(興亞)의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해방 이후 일본에서는 총동원체제에 입각한 ‘신체 규율’이 거의 사라진 반면 조선(한국)에서는 그대로 남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1970년대 한국의 유신체제는 국민교육헌장·징병제·교련·체력장·국민체조 등 1940년대 총동원체제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40대들은 체력장 종목으로 ‘수류탄 던지기’를 했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정 교수는 “한국에서 신체의 동원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근본적으로 줄어들었다”면서 “한국의 민주화는 한편으로는 군사정권의 퇴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 총동원체제의 해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고마고메 다케시 교수는 식민지에서의 ‘신사참배’ 문제를 검토한다. 그는 새해 첫 날 신사를 참배하는 ‘하쓰모데(初詣)’라는 관행은 현재 일본인들 사이에 전통으로 정착되어 있지만, 이는 기껏해야 100여년 전 만들어진 ‘창출된 전통’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대만의 사례를 통해 신사참배의 폭력성을 서술한다.

    대만의 타이난장로교중학은 1885년 영국인 선교사가 세운 학교지만 대만인들은 이 학교를 민족학교로 생각했다. 이 학교의 중심이 된 인물은 린마오성(林茂生)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도쿄제대에 유학한 대만인 최초의 문학사였고, 미국 콜럼비아대에 유학해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였다. 그는 대만으로 돌아와 타이난장로교중학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이 학교가 “후원은 영국인이라 해도 실체는 순연한 대만 민중의 교육기관”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일제는 이 학교를 정식학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학교 졸업생은 상급학교로 진학할 길이 막혀 있었다. 린마오성은 대만총독부에 “정식 중학교로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일제는 “학교 전체가 신사참배를 해야 중학교로 인정한다”고 답했다. 1934년 들어 린마오성은 일제의 탄압과 공격을 더이상 견디지 못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다. 신사참배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만총독부는 “학교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그를 이사장에서 해임했다. 고마고메 교수는 “정월의 축하행사인 ‘신사참배’와 식민지에서의 ‘신사참배’는 같은 것이면서도 다르다”며 “식민지에서 신사참배라는 일상 행사는 대단히 폭력적인 사건이었다”고 평가한다.

    마쓰다 요시로 교수는 대만에 행해진 일본어 교육을 검토한다. 그는 대만의 선(先)주민 중 하나인 초우족 사람인 무키노 세이이치가 겪은 이야기를 구술사 차원에서 소개한다. 그는 “일본 교육을 통해 일본 정신을 배운 것이 좋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잘 치는 한족과는 달리 일본은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정직의 미덕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선주민의 대가족제도를 폐지하고 종족 지도자의 권한을 빼앗아 항일운동의 싹을 자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4편의 글은 각각 독립적이지만, 일제의 식민지주의가 ‘동화’와 ‘차별’이라는 이중성과 함께 지배자의 ‘강제’와 피지배자의 ‘동의’라는 이중성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는 이 시기가 어느 하나의 시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시대임을 시사한다. ‘신사참배’를 결국 수용한 린마오성 같은 인물을 대만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지도 궁금하다. 4편의 글이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식민지주의를 완벽하게 복원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식민지주의란 이데올로기나 거대한 담론이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발견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려준다.


     
    <더 읽을만한 책>

    ‘동화’와 ‘배제’, ‘강제’와 ‘동의’라는 두 얼굴을 한 일제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조선토지조사사업의 연구’(김홍식 외 지음, 민음사)는 일제의 정책이 수탈만이 아니라 근대화를 가져왔음을 주장해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 논쟁을 촉발했다. 그러나 ‘개발없는 개발’(허수열 지음, 은행나무)은 일제시대는 외형적으로 개발됐지만 조선인과는 무관한 개발이었으며, 훗날 한국의 근대화에도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논박한다.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넘어’라는 부제를 단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마이클 로빈슨·신기욱 지음, 삼인)은 일제시대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식민주의와 민족주의가 대결하는 양상은 물론, 양자가 근대성으로 가는 헤게모니를 놓고 경쟁하는 모습에도 주목할 것을 주장한다. ‘식민지의 회색지대’(윤해동 지음, 역사비평)는 일제시대 대다수 사람들이 친일(親日)과 반일(反日)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제통치에 협력하고, 때론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얘기한다.

    일제시대 생활과 풍속을 통해 시대를 재구성하는 연구는 최근 국문학자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신명직 지음, 현실문화연구)는 일제시대 잡지와 신문에 나타난 ‘만문만화’를 통해 식민지의 일상을 복원한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김진송 지음, 현실문화연구), ‘연애의 시대’(권보드래 지음, 현실문화연구), ‘학교의 탄생’(이승원 지음, 휴머니스트), ‘황금광 시대’와 ‘경성기담’(이상 전봉관 지음, 살림) 등도 일제시대의 다양한 생활과 일상사를 복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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