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을 만든 주범은 누구인가

  •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

    입력 : 2007.06.08 22:50

    헌법에 비친 역사 | 조지형 지음 | 푸른역사 | 364쪽 | 1만5000원

    사학자 조지형 교수가 쓴 이 책은 미국 헌법과 헌법사를 통해 우리 헌법과 헌정 현실을 성찰하고 헌법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미국 헌정사를 전공하는 사학자답게 미국과 한국,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죽어 있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와 대화하는 역사를 통해, 법전 속에 박제된 헌법이 아닌 ‘살아 있는’ 헌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헌법에서의 노예제, 대통령제, 부통령제도, 의회의 지위와 권한, 사법권의 구성과 역할이 어떤 과정으로, 어떤 정황 속에서, 어떤 목적과 내용을 가지고, 제정되고 운용되었는지가 사학자의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분석력에 의해 다루어진다. 그러한 지적 탐색은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관철하는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위해 국민이 스스로 만드는 헌법의 필요성으로 귀결된다. 결국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갈구하는 것은 “정치와 사법, 사회와 헌법이 별개가 아닌 하나의 다른 측면”이며 “미국 헌법과 미국 헌법제정사를 통해 우리 사회와 우리 헌법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의 갈구를 상아탑의 칙칙한 서가에만 묵혀두지 않고 어느 틈엔가 헌법논쟁이 어색하지 않게 된 일반 국민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가 오늘날 구가하는 ‘헌법의 시대’를 ‘헌법혹사(酷使)나 헌법기만(欺瞞)의 시대’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 국민들이 갖추어야 할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헌법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수단으로 헌법이 오용되는 한 우리가 자랑하는 민주화는 허상에 불과함을 깨칠 수 있다.

    ▲1787년 연방정부 수립을 위한 필라델피아 제헌회의를 그린 그림. /푸른역사 제공

    헌법계몽 혹은 헌법의식화는 ‘헌법에 비친 역사’의 의미를 엿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정작 미국 헌법과 헌법사의 직조(織造)과정에서 확인하게 되는 저자의 진의는 헌법은 그 자체가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역사가 된 미국헌정은 미국 헌법에 온전히 녹아 있고 그 헌법은 현재의 미국 정치를 규정한다. 동시에 헌법은 헌정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미래의 역사를 준비한다. 헌법을 정치와 결연된 법의 영역으로만 인식하여 정치와 함께 호흡해야 할 헌법을 화석화(化石化)하는 헌법교조주의(憲法敎條主義)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1987년의 민주화는 우리에게 헌정사상 가장 안정된 헌법을 선사하였다. 20여년간 안정적인 정권교체와 인권 신장이 이 헌법의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학자 조지형의 1987년 헌법에 대한 평가는 맹목적이지 않다. 1987년 헌법은 사회협약의 단계를 성취하지 못한, 일부 정치지도자들의 제한적 정치협약의 본질적 한계 때문에 자랑스런 역사의 성취물인 동시에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역사적 장벽”의 이중성을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시각 하에 미국 헌법과 제헌사를 소재로 우리 헌법 혹은 개헌론의 과제들이 검증의 도마위에 오른다. 초헌법적이고 삼권 우월적 지위의 빌미가 되고 있는 대통령의 국가원수로서의 지위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주범으로 꼽히는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미국 헌법사에 대한 해설은 헌법전문가들도 경청해야 할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첫째, 애초 미국 건국자들이 대통령제를 고안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의회독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제왕적 대통령에 익숙한 우리에게 의회독재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이 대통령제였다는 사실은 무분별한 의회중심적 개헌론의 한계점을 제시해준다. 둘째, 국회가 국민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사회의 다원성을 반영하고 민주적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하원의원의 임기가 2년으로 짧은 것이나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이지만 매 2년마다 3분의 1씩 개임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정신에 입각하여 선거개혁은 물론 순차적 국회구성을 제안하고 있는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과제가 의회개혁에도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셋째, 법관 종신제, 법관자격의 사회다원성의 보장, 법관선거제의 현실은 사법독립의 진정한 위상에 대한 우리사회의 고정관념에 경종을 울린다. 사법권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며 국민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폐쇄적 법관양성체제에 따른 사회적 대표성의 결여와 중앙집권적 사법행정을 통한 사법의 관료화가 내부로부터 사법의 독립을 훼손하고 있는 것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내용의 문제의식은 형식에서도 관철된다. 전문적 내용을 평이한 문체로 소화할 뿐만 아니라 질문식과 경어체로 일관된 체제는 편집(偏執)적인 관찰자에게나 포착될 일부 오탈자에도 불구하고 독자에 대한 저자의 배려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학자의 눈에 비친 헌법이 ‘헌법에 비친 역사’의 모습으로 우리의 헌법생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 읽을 만한 책  

    미국 헌법 제정회의를 주도했던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메디슨 등 연방주의자들의 정치이념을 알 수 있는 고전으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알렉산더 해밀턴 등 지음, 한울)를 권한다. 미국 헌법 해석의 주요한 사초가 되는 책이다. ‘판사가 나라를 잡는다’와 ‘판사가 나라를 살린다’(밥 우드워드 지음, 철학과현실사)는 워터게이트를 파헤친 기자 밥 우드워드가 미국헌정을 움직인 연방대법원 판결의 이면사를 파헤친다. 미국 헌법의 주요과제를 일별하는 ‘법은 누구 편인가?’(러셀 갤로웨이 지음, 교육과학사)는 연방대법원이 어떤 정치이념에 바탕하여 판결을 내려왔는지 분석한다. 한국 헌법의 제헌과정을 소개한 최초의 대중서는 ‘우리 헌법의 탄생’(이영록 지음, 서해문집)이다. 헌법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과 그 헌법의 헌정사적 의미를 통해 헌법이 역사의 산물임을 증명한다. ‘헌법과 미래’(강원택 등 지음, 인간사랑)는 정치학자·역사학자·헌법학자 7명이 최근의 정치 현안 속에서 헌법의 현실정치적 함의를 다양한 시각으로 제공한다. ‘헌법 다시보기’(함께하는 시민행동 엮음, 창비)는 철학·정치학·여성학 등의 연구자들이 1987년 헌법의 개정론을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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