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월스트리트를 습격하다

  • 최성환 대한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입력 : 2007.07.13 22:58

    패배해도 패배 모르는 매력적인 금융시장… 인간적인 면 즐겼을 것

    ▲ 이매뉴얼 더만 /승산 제공
    1980년대 초중반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는 ‘POW’라는 말이 유행했다. 전쟁도 없는 때에 전쟁포로(POW·prisoners of war)가 웬 말인가 하겠지만 이 때의 POW는 ‘월스트리트의 물리학자(physicists on Wall Street)’를 뜻하는 말이었다. 증권가로 유명한 월스트리트에 웬 난데없는 물리학자 타령인가. 당시 1, 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금리와 주가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금리와 주가 예측은 물론 위험관리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월스트리트가 눈을 돌린 전문가집단이 물리학자들이었다.
    이들 물리학자들은 수학과 통계학,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능해 갈수록 복잡해지는 금융상품의 개발과 예측에 필요한 적임자들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실험정신과 자신의 지식을 금융 현장에서 활용하는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야근은 물론 휴일근무도 밥 먹듯 하는 월스트리트의 생리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들이었다.

    이 책의 제목 ‘퀀트’는 ‘양(量)의’ 또는 ‘정량(定量)적인’이라는 뜻의 영어 ‘quantitative’에서 유래됐다. 복잡한 수학과 통계학, 물리학 등을 이용해 파생금융상품과 같은 위험이 높은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동시에 위험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금융시장분석가 또는 금융공학전문가(financial engineer)를 가리키는 말이다. 2009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하면서 우리 금융시장에 전문가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퀀트가 없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대표적인 POW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매뉴얼 더만(Emanuel Derman)의 자서전이다. 더만은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AT&T의 벨 연구소에서 분자물리학과 컴퓨터 과학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연구소 생활에 싫증난 그에게 헤드헌터들이 접근했다. 제2의 아인슈타인이 되겠다는 꿈은 사라지고 같은 연구실의 동료가 세미나에 초대됐다는 사실을 부러워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한 면접관에게 더만이 물었다. “제가 여기 다니면 앞으로 10년 뒤에는 뭘 하고 있겠습니까?” 뉴욕타임스에서 읽은 이직에 관한 기사에서 새 직장에서 앞으로 10년 뒤 무슨 일을 하게 될 지를 물어보라는 내용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었다.

    이들 물리학자들은 수학과 통계학,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능해 갈수록 복잡해지는 금융상품의 개발과 예측에 필요한 적임자들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실험정신과 자신의 지식을 금융 현장에서 활용하는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야근은 물론 휴일근무도 밥 먹듯 하는 월스트리트의 생리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들이었다.

    이 책의 제목 ‘퀀트’는 ‘양(量)의’ 또는 ‘정량(定量)적인’이라는 뜻의 영어 ‘quantitative’에서 유래됐다. 복잡한 수학과 통계학, 물리학 등을 이용해 파생금융상품과 같은 위험이 높은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동시에 위험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금융시장분석가 또는 금융공학전문가(financial engineer)를 가리키는 말이다. 2009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하면서 우리 금융시장에 전문가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퀀트가 없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대표적인 POW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매뉴얼 더만(Emanuel Derman)의 자서전이다. 더만은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AT&T의 벨 연구소에서 분자물리학과 컴퓨터 과학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연구소 생활에 싫증난 그에게 헤드헌터들이 접근했다. 제2의 아인슈타인이 되겠다는 꿈은 사라지고 같은 연구실의 동료가 세미나에 초대됐다는 사실을 부러워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한 면접관에게 더만이 물었다. “제가 여기 다니면 앞으로 10년 뒤에는 뭘 하고 있겠습니까?” 뉴욕타임스에서 읽은 이직에 관한 기사에서 새 직장에서 앞으로 10년 뒤 무슨 일을 하게 될 지를 물어보라는 내용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었다.

    대답다운 대답을 못 들은 상태에서 더만은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로 옮겼다. 이후 17년 동안 퀀트로 살았다. 지금은 다시 컬럼비아대학에서 금융공학과정 교수로 퀀트를 길러내고 있다.

    물리학자에서 퀀트로 인생 항로를 크게 바꾼 더만의 삶은 어땠을까. 그의 변화가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하는 것을 묻는 게 아니다. 물론 퀀트로서의 더만은 성공했다. 수학박사로 비슷한 시기에 골드만삭스에 입사한 피셔 블랙과 함께 블랙-더만-토이 모델을 개발했다. 블랙은 마이런 숄즈와 함께 주식시장에서 옵션가치 평가 이론으로 유명한 블랙-숄즈 모델을 개발한 퀀트였다. 블랙이 1995년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1997년 숄즈와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을 것이다. 블랙-더만-토이 모델은 블랙-숄즈 모델을 채권시장에 적용한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더만은 골드만삭스에서 전무까지 승진했고, 2000년에는 선가드 국제금융공학자협회로부터 올해의 금융공학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리학과 금융을 접목한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는 하느님을 상대로 경합을 벌이는데 하느님은 자신이 세운 법칙을 그리 자주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하느님을 외통수로 몰아붙이면 그 분은 패배를 시인한다. 반면 금융에서는 하느님의 피조물을 상대로 경합을 벌이는데 그들은 자산을 자신의 덧없는 의견을 기반으로 평가한다. 이들은 패배해도 패배한 줄 모르고 그래서 계속해서 시도한다.” 더만이 물리학보다 금융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낀 것은 금융의 경우 패배와 실수로부터 배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르고 넘어가기도 한다는, 보다 더 인간적인 면을 즐겼기 때문이 아닐까. 원제 ‘My Life As a Quant’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