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환자는 움직이는 과녁 어떤 진단도 완벽하지 않아”

    입력 : 2007.10.26 22:23

    '닥터스 씽킹' 저자 제롬 그루프먼 인터뷰
    "오진은 지름길만 찾으려다 생겨
    의사들 스스로 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제롬 그루프먼(Jerome Groopman·55) 하버드대 의대 교수 겸 베스트 셀러 작가는 “의술은 과학과 영혼의 합일이어야 한다”고 했다. “불완전한 인간인 의사가 의사 결정을 할 때, 환자와 그의 가족·친구에게 생각의 문을 활짝 열어야 스스로를 지킬(오진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진은 의사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창(窓)이며, 대부분의 의료 과실이 의사의 기술적 실수가 아니라 사고(思考) 결함에서 비롯된다”고도 했다. 스스로 오진의 가해자이자 그로 인한 피해자였던 사실을 토로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 그루프먼은 자신의 골(骨) 스캔 사진을 판독한 의사로부터 “가슴뼈 점들이 전이성 암으로 추정된다”는 오진을 듣고 며칠간 불면의 밤을 보냈고, 척추 수술이 잘못돼 19년 간 고통 받았으며, 오른 손목 통증을 겪으며 3년간 전문의 여섯 명으로부터 네 가지 서로 다른 원인·처방을 듣고 두 차례 수술받은 경험을 했다. 그래서 ‘힘없는 환자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손 통증이 아직도 있어 오른 손목에 보호대를 두르고, 구술 녹음기를 이용해 타자수가 받아 적는 방식으로 책을 쓴다.


    의사 세계의 내밀한 얘기들을, 그는 최근 국내 소개된 자신의 네 번째 저작 ‘닥터스 씽킹’(원제 How Doctors Think, 이문희 옮김, 해냄, 396쪽, 1만3000원)에 적어 놓았다. 이 책은 올해 3월 미국 내 출간 직후 베스트 셀러로 많은 독자들의 손을 탔다. 의사들의 내면 세계, 의사·환자 간 바람직한 관계를 체험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서술한 것이 작품 특징이다. 예상과 달리 “의사들이 자신의 오진 경험을 알려주며 적극 도와줬다”고 그는 말했다.

    그루프먼은 “나를 인터뷰하러 서울서 보스턴까지 온 건가요”라고 물었고, “다른 도시에도 인터뷰 선약이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휴~ 다행이네”라고 안도했다. 보스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7척(尺) 장신이었다. 21년간 함께 일한 한국인 동료 덕에 한국 문화에 꽤 익숙하다고 했다. 그는 질문에 “그건 두 가지로 답할 수 있다”고 하는 습성이 있었다.
    ▲ 제롬 그루프먼을 인터뷰하는 내외신 기자들은 그의 나이(1952년생)와 신장(2m9㎝)을 빼먹지 않고 묻는다고 한다. 그는 손목이 아파 자판도 직접 못치고, 어렸을 때엔 장래가 걱정스러우리만치 주의 산만했다고 했다.
    ―당신 작품에 가상의 사연(fiction)을 덧붙이진 않는가?

    “얘기 꾸며내는 게 싫다.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실존 인물이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또는 솔직한 고백을 듣기 위해 환자·의사 이름만 달리 쓰는 수가 간혹 있다. 사실만 적어서 완필 작가(slow writer)가 된 것 같다.”

    ―의사들의 치부를 토로해 의학계가 환영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 이런 고백을 많은 의사들이 원했다는 걸 확신하지 못했을 뿐,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냈다. 의학은 불확실성의 과학이고, 우리 모두는 오진한다. 이 책 전에는 왜 해당 의술(의사)이 성공했거나 실패했는지 대중에게 알려주는 책이 많지 않았다.”

    (※책에는 40대 산림 감시원의 건장한 외모에 홀려 심근경색 환자를 ‘무리하게 일해 근육에 이상이 온 것 같다’고 한 캐나다 의사의 경우, 구리 침착으로 간·뇌 손상이 오는 희귀 유전질환인 윌슨병을 앓는 73세 환자를 ‘얼른 집에 돌려보내고 싶은 혐오스러운 알코올성 간경변증 환자’로 판단한 명의의 사례, ‘적자를 면하려 허겁지겁 환자를 받는 소아과 의사들’ 실태 등을 썼다.)

    ―그렇다면 얼만큼 호응이 있었나?

    “미국 내 4개 명문 의대 학장들이 연례회의에 초빙해 책 내용을 바탕으로 정규 교과 과정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27세에 심한 척추 통증을 처음 겪고 수술이 잘못돼 고생했던 체험을 밝힌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작가가 된 계기가 됐나?

    “아니다. 의사 생활을 20년쯤 하고 40대 중반이 되자 내가 사랑하는 직무 말고 다른 일을 찾게 됐다. 첫 책 원고는 11개 출판사로부터 거절 당했는데, 그 중 일부는 ‘당신은 좋은 저자가 될 소질이 없다’ ‘시간낭비 말라’ ‘읽어볼 가치도 없다’고 혹평했다.”

    ―책을 통해 주장을 펴려 했던 애초 계기는 무엇인가?

    “의사들이 자신감을 갖고 유능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의사들 스스로 실수를 범할 수 있는 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의사들의 책임과 환자와의 의사소통을 강조했는데, 환자나 그 친지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용기와 희망을 갖는 게 중요하다. 가족들은 편안한 환경을 만들 수 있게 격려하고 긍정적인 힘을 줘야 한다.”

    (※환자도 주치의를 정할 때 성격·임상능력을 주위에 묻고 의사의 첫인상도 꼼꼼히 따지라고 그는 책에서 조언했다.)

    ―의사들은 가망 없는 환자의 병세에 대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곤 하지 않은가?

    “환자에 따라 다르다. 한국인 아내를 둔 한 남성이 위암으로 1년을 못 살거라 진단 받고도 18년 간 재발하지 않은 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의사는 신이 아니고, 어떤 진단도 완벽하지 않다. 진리 안에 진실한 희망이 있고, (진실을 얘기해) 희망을 가질 여지를 줘야 한다.”

    ―의학에서 순응과 인습, 직관과 통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여전히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미국 내 유명 대학병원에서 엿새간 입원한 환자에게 상담과 검사만 해서 자궁암을 뒤늦게 발견한 사례가 있었다. 의학은 예술이고, 개개인에 맞춰 적용해야 한다.”

    ―건강 하려면 의사 따라 하지 말라는 속설이 있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운동, 특히 덜 자극적인 수영을 한다. 술·담배는 전혀 안 한다. 아내도 의사(내분비학)여서 몸에 불편한 점을 서로 말하고 해결 방법도 논한다.”

    ―환자 심리를 이해하는 것은 의사가 풀어야 할 제2의 퍼즐이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환자와 오랜 시간 함께 할 여건이 못 되지 않은가?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은 환자 진료상의 큰 문제다. 최근 갓 은퇴한 노(老)의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환자와 충분히 상담할 수 없던 게 아쉬웠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환자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의사들의 오진 이유를 분석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진단 때 지름길을 택하려는 습성인데, 초진이나 첫 검사 결과만 믿고 즉각 판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85%를 맞춰도 15%쯤은 오진한다고 본다. 둘째는 ‘그래도 내 판단이 옳다’고 하는 선입견이나 정서적인 집착을 키워가는 데서 온다.”

    ―30년 의사 생활 중 스스로 범한 모든 오진을 기억한다고 실토했다.

    “책에서 소개했듯 내 인생 최악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내과 레지던트 시절 흉통을 호소한 중년 부인에게 소화불량이라고 판단해 제산제를 처방한 일이었다. 치명적인 대동맥 파열을 나중에 발견했고, 환자는 사망했다.”

    ―암·에이즈를 연구하다 보면 삶과 죽음의 문제 같은 철학적 사유도 할 것 같다.

    “그렇다. 생이란 통계가 아니라 항시 예측 불가능한 것이고, 우리 모두 움직이는 과녁임을 느낀다. 회복과 재생에 절실한 정신적 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의사와 환자 중 고정 취재원이 있는가?

    “저널리스트와 달리, 모든 사람이 취재 대상이다. 독자들로부터 이제껏 편지를 1000통 넘게 받았는데, 발신인은 의사와 환자가 반반이었다. 논쟁의 장을 열어준 셈이다. 의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견해를 보내줬고, 내 이야기의 원천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집필할 작정인가?

    “두 가지다.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있을 때까지, 그리고 숨을 거둘 때까지.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그것이 내 세계를 이해시키고 의사들로 하여금 더 나은 수준, 더 나은 인성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닥터스 씽킹’ 쓰는 데 얼마쯤 걸렸나?

    “두 가지로 답할 수 있다. 3년도 되고 30년도 된다. 30년 간 품은 생각을 글로 옮겼다는 뜻이다. 내가 또는 의사들이 왜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섰는지 최근에야 깨달았다.”

     

    ◆‘닥터스 씽킹’의 말말말

    -좋은 의사는 자폐증적인 임상 태도를 지닌 뛰어난 외과의사와, 뛰어나진 않지만 친절한 일반 내과의사, 이 둘의 총합이다.

    -의학은 경제학과 달리 행위와 사고의 동시 진행을 요한다.

    -응급실에서조차 즉각적인 판단이 옳은 것은 아니다. 올바른 사고를 하려면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신중한 여유’가 필요하다.

    -지나가는 기차의 차창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찾는 것과 비슷한 게 1차 진료의 현실이다.

    -좋은 의사는 시간의 지배자다. 어떤 경우에 시간을 들여 환자에게 묻고 자신의 의견을 설명해야 할지 아는 것이다.

    -완벽은 최선의 적이며, 수술에선 그 무엇도 완벽할 수 없다. 모든 게 타협이다.

    ◆제롬 그루프먼

    컬럼비아 의대를 수석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생리학·외과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캘리포니아대(UCLA) 의대에서 혈액학·종양학 전문의가 됐다. 현재 하버드 의대 부속 베스 이스라엘 디커니스 종합병원의 실험의학과장으로, 암과 에이즈(AIDS)의 기본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뉴요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에 의학 칼럼을 기고해 왔다. 2004년 작 ‘희망의 힘’(The Anatomy of Hope·넥서스)은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불렀고, ‘우리 시대의 기준’(The Measure of Our Days), ‘못 다한 이야기들’(Second Opinions) 같은 다른 저서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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