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평] 관용이 사라지는 순간 제국은 몰락했다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 2008.03.14 16:54 | 수정 : 2008.03.18 09:52

    제국의 날: 초강대국들은 어떻게 세계적 지배국가로 떠올랐는가, 그리고 왜 몰락했는가? (Day of Empire: How Hyperpowers Rise to Global Dominance and Why They Fall)
    에이미 추아 지음|더블데이|432 쪽|27.95달러

    이 책은 제국(帝國)들의 일대기를 옴니버스적으로 다룬다. 이 책에 합승하고 있는 제국들은 페르시아부터 당나라, 몽골, 에스파냐, 나치 독일의 제3제국,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을 표방했던 일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저자 에이미 추아(Chua)는 강대국(superpower)에서 초강대국(hyperpower)으로 발돋움하기도 했고, 결국 종언을 고한 제국의 일대기를 톨레랑스(tolerance)라는 화두로 풀어낸다.

    톨레랑스를 가진 제국은 흥했고, 톨레랑스가 없는 제국은 망했다. 제국에게 톨레랑스는 필수조건이다. 제국은 특정 문화나 인종의 경계를 뛰어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나 인종에 대한 톨레랑스는 제국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었다. 물론 톨레랑스가 제국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제국이 되려면 여러 지정학적 조건과 리더십이 동시에 필요하다. 적어도 하나 확실한 것은 톨레랑스가 희박해지는 시기와 제국이 쇠퇴하는 시기는 일치했다는 점이다.

    제국에 관한 기존 저술가들과는 달리 에이미 추아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는 듀크대 로스쿨을 거쳐 2001년부터 예일대 로스쿨에서 강의하고 있는 법학자다. 그래서인지 이란의 선조인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묘사는 약간 거칠다. 영화 '300'에서 나온 것같은 황당한 오리엔탈리즘적 왜곡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서구중심적인 서술이다. 피에르 브리앙(Pierre Briant)의 '사이러스왕에서 알렉산더까지―페르시아 제국사' 같은 책에 과도하게 의존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재계의 촉망을 받는 예일대 로스쿨의 국제계약법 담당 교수가 굳이 제국의 일대기를 쓴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자기 정체성에 대한 몰입적 탐색을 들 수 있다. 저자의 탐색은 중국에서 태어나 필리핀에서 성장했고, 버클리공대에 자리잡은 아버지 추아(蔡) 교수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아버지가 집에서 절대 영어를 쓰지 못하게 했고, 그 결과 중국어 억양이 섞인 영어발음 때문에 놀림감이 된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토록 중국어를 강조했던 아버지는 영어작문대회에서 2등상을 수상한 딸의 시상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이런 수치를 내게 안겨주지 말거라." 저자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엘리트사회에 진출한 자신의 모습에서 아메리카 제국의 톨레랑스를 본다.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문제의식을 보편화시키는 저자의 능력은 이미 전작 '불타는 세계(World on Fire)'에서 발휘된 바 있다. 그는 친가가 속한 동남아 화교집단에 대한 분석을 통해 불타는 세계화의 필연성을 분석했다. 이 책에서도 중화제국에 관한 분석은 추아(蔡)가문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지극히 사적인 여행기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분명 미국 사회과학계를 지배하는 가치배제적이고, 주객분리적인 접근법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저자 자신의 삶마저도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기에 더욱 생생하고, 독창적이다.

    다음으로 새로운 조국이 된 아메리카 제국에 대한 애국심이다. 저자는 아메리카 제국이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이민자 출신의 엘리트들을 더 많이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일대 교수인 남편이 유태계라는 사실도 밝히고 있다. 이민은 침략, 정복, 합병이 가져다 준 것과 유사한 제국건설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다른 편에서 보면 두뇌유출을 의미하겠지만.

    결국 저자의 정치적 관점은 힐러리오바마의 정책구상과 일치한다. 저자는 로마제국과 아메리카 제국을 비교한다. 이 대목에서 아프리카 출신의 로마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193~211년 재위)의 이미지는 오바마와 묘하게 겹쳐진다. 저자는 자신의 조국인 아메리카가 이민의 제국이라고 말한다. 제국이기는 하지만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에 기초한 제국이다. 민주성과 제국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이것이 오늘날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이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아메리카 제국의 쇠퇴를 원하는 여론이 다수라고 본다. 그러면 누가 아메리카 제국을 대신할 것인가? 중국, 유럽연합, 그리고 인도의 가능성을 검토한다. 저자는 그 가능성을 이민자들에 대한 톨레랑스라는 관점에서 푼다. 새로운 세계지배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자국의 인적자원만으론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강대국이 되려면 세계 최고의 인적 자원을 끌어모을 수 있는 톨레랑스가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중국에 대한 평가는 싸늘하다. 상하이에선 바텐더나 헬스클럽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많은 백인들을 볼 수 있지만, 고급 인력에게 중국은 이민을 갈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수천년 간 하나의 선조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중화적 정체성도 고급 인력의 이민을 가로막는다.

    유럽연합 역시 인구이동의 관점에서 세계지배적 제국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유럽연합은 "무슬림의 유럽"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민문제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다. 유럽은 전 세계로부터 고급 인력을 끌어들이는데 소극적이다. 비교적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국가는 인도다. 이런 평가는 인도가 세계화시대의 총아로 각광받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인도가 품고 있는 다양성은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카스트제도의 반대편에서 인도의 미래를 밝게 비춰주고 있다. 그러나 인도는 당분간 미국을 대신하기 보다는 미국과의 동반적 발전에 만족할 것이다.

    저자는 아메리카 제국의 날도 저물 것이라고 본다. 이런 분석은 1981년 프랑스의 석학 장 밥티스트 뒤로젤이 펴냈던 책의 제목을 연상시킨다. "모든 제국은 소멸하리라." 저무는 아메리카 제국의 날에 대한 처방은 명료하다. 단기적으로는 이민자에게 더 문호를 개방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초강대국의 반열에서 강대국의 반열로 내려와 여러 제국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진단과 처방은 명료한 만큼이나 단순하다. 이민자들이 저자처럼 끝까지 제국에 충성할 것이라고 보는 가설이 특히 그러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톨레랑스가 없어졌기 때문에 제국이 망한 것일까, 아니면 제국의 쇠퇴로 인해 파이가 작아지면서 톨레랑스가 희박해진 것일까? 톨레랑스는 단지 제국에게만 필요한가? 한 때 대한제국을 선포하기도 했지만, 제국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한이나 북한에서 톨레랑스는 기대하기 어려운 덕목일까? 

    ♣ 바로잡습니다
    ▲15일자 D2면 '제국의 날' 해외 서평 기사 중 지면 제작상의 착오로 잘못 표기한 '아들의 시상식'을 '딸의 시상식'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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