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속엔 뭐가 들었나

  • 표창원 경찰대학 범죄심리학 교수

    입력 : 2009.02.28 03:01

    인간이라는 야수
    토마스 뮐러 지음|김태희 옮김|황소자리|288쪽|1만3800원

    그래픽=송윤혜 기자 ssong@chosun.com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이 던져준 파장과 혼돈이 채 가시지 않은 우리에게 유럽에서 선물이 도착했다. 유럽에서 제일 유명한 프로파일러 토마스 뮐러의 신간 《인간이라는 야수》다. 마치 "당신들만 그런 고통을 겪은 것이 아니오. 우리 얘기도 한번 들어보시오"라는 이웃의 위로 같은 느낌이다.

    음악의 아버지가 독일의 바흐라면 범죄학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의 롬브로조이다. 그렇다면 범죄심리학의 아버지는 누굴까? 1910년 세계 최초의 범죄심리학 저서 《범죄 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을 펴낸 오스트리아의 한스 그로스(Hans Gross)다. 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행동과학부'(Behaviour Science Unit)가 설치되고 오늘날 프로파일링(Profiling)으로 알려진 '범죄심리학적 용의자 특성 파악'(Psychological Profiling of Suspect) 기법이 개발되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저자 뮐러 개인의 프로파일러로서의 성장사는 FBI의 로버트 레슬러보다는 불모지를 개척한 한스 그로스를 연상시킨다. 양차 세계대전과 이후 유럽의 지성들이 전체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자유의 땅 미국으로 엑소더스를 감행한 뒤 세계의 지적 성장사는 미국 일방주의를 벗어날 수 없었다. 범죄 관련 학문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은 근대 서구문명의 고향다운 깊이와 무게를 지니고 있다. 책은 유럽적 인문학 전통을 강하게 풍긴다.

    《인간이라는 야수》는 일단 재미있다. 경찰 입문서부터 유럽 최고의 프로파일러가 되기까지 저자 스스로의 인생역정과 경험담을 사실적으로 털어놓는 한편 오스트리아와 유럽에서 발생한 희대의 살인사건들과 그 살인자들에 대한 독특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집중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 범죄심리학과 법정신의학의 역할과 중요 이론에 대한 설명 역시 넘침 없이 쉽고도 유용하다.

    희대의 살인자들과의 면대면(面對面) 인터뷰 내용이 글 전체의 척추를 이루는 가운데 작은 에피소드들이 마치 '책 속의 책'을 구성하듯 오밀조밀하게 배열되어 있다. 마치 이 분야의 고전들인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로버트 레슬러),《프로파일링》(브라이언 이니스) 및 《살인의 역사》(콜린 윌슨)가 믹서기에서 갈린 후 한 권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굳이 범죄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새겨들을 만한 얘기도 많다. "여섯 살, 일곱 살 그리고 여덟 살 무렵에 형성되는 폭력적 판타지들은 주인공이 90분 동안 150명 정도를 죽여버리는 폭력 비디오와 영화를 계속 소비하면서 더욱 커진다. 호르몬 과잉으로 인해 처음으로 육체적 흥분을 느끼게 되고 성에 몰두하기 시작하는 연령대를 이러한 폭력적 판타지가 꿰뚫고 지나간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우선 잔혹하고 끔찍한 살인범들을 마치 예술가나 기능인이라도 되는 듯 존중·이해하려는 듯한 태도는 우리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유사한 범죄를 막고 조기에 검거하기 위해서는 끔찍한 살인범도 이상한 괴물이 아닌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설명을 십분 수용한다 하더라도 일부 독자는 거북함을 느낄 것이다. 게다가 모방범죄의 우려도 있다. 뮐러는 아마도 "유럽의 독자 수준은 그런 유치한 권선징악적 태도를 졸업한 지 오래요"라고 반박하겠지만.

    다른 아쉬움은 유럽보다 미국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는 점이다. 범죄자의 이름과 교도소 풍경, 사건의 공간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제외한다면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너무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적 접근방식이 두드러진다. 로버트 레슬러 등 미국 작가들의 '아류', 즉 오스트리아판 《살인자들과의 인터뷰》가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번역서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표현도 아쉽다.

    이런 작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미 웬만한 유럽 국가보다 훨씬 많은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우리에게 뮐러의 《인간이라는 야수》는 여러 생각거리와 참고자료를 던져주는 훌륭한 매개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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