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이 저자] 전세계 면발 섭렵한 이 남자 "국수는 감각적인 매력 있죠"

    입력 : 2009.08.22 03:38

    《누들 로드》 이욱정 PD

    이 사람을 칼국수 집에서 만나고 보니, 맞은편에서 한 여인의 입속으로 '후루룩' 빨려 들어가는 날렵한 국수 가락이 그렇게 관능적일 수 없었다. 하늘거리며 허공을 타고 올라가는 면발의 맵시에 잠시 넋을 잃었다. 다큐멘터리 시리즈 《누들 로드(Noodle Road)》로 한국방송대상을 타고 최근 같은 제목의 책(예담 발간)까지 펴낸 KBS 이욱정 PD.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식감(食感)은 물론이고 가늘고 길게 쭉 뻗어 내려간 모양새까지, 엄청난 감각적 매력을 지닌 음식이 여기 있다"며 국수 예찬론을 늘어놓는 그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국수의 특별한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죠. 그중 첫 번째가 스피드. 빨리 만들 수 있고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문명의 발전에서 속도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잖아요. 휴대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건조시킨 국수는 세상 어디에라도 들고 갈 수 있죠. 그리고 물에 타서 끓이면 맛있게 먹을 수 있고요. 국수는 적응력도 탁월합니다. 김치와 만나 김치말이 국수가 되듯, 세상 어떤 재료와도 오묘한 맛으로 잘 섞이잖아요."

    대학에서는 영문학, 대학원에서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KBS에 입사한 뒤부터 줄곧 음식 다큐멘터리를 꿈꿔왔다. 성장 과정의 영향이다. "아버지가 평안도 진남포 출신이라서 습관적으로 냉면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서울 을지로 '우래옥' 외의 냉면집은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그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각종 일본 음식과도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냉면·우동·소바 등 아시아의 다양한 국수들을 수시로 먹었습니다. 가족 간 대화에는 늘 음식이 주요한 소재가 됐죠. 나이가 들면서는 국수를 맛있게 요리하는 법을 놓고 토론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자란 그는 석사 논문 주제도 남달랐다. '이슬람의 음식 금기'.

    국수의 문화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동명(同名)의 책으로 발간한 KBS 이욱정 PD. 그는 “다큐멘터리보다는 이 책에 2년간 10여개국을 돌며 취재한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고 말했다./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누들 로드》는 국수의 문명사다. 중국에서 태어난 국수가 어떻게 아시아권은 물론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까지 전파됐는지, 그리고 20세기 접어들며 세계적 음식으로 폭발적 사랑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소상하게 풀어놓는다.

    전 세계 국수를 섭렵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국수는 여전히 한국의 냉면. 하지만 그를 경탄하게 만든 국수는 따로 있었다. 일본의 소면. "만드는 과정을 보면 지고지순하다는 느낌이 든다"며 "명주실을 손으로 뽑아내듯 엄청난 공력과 시간, 그리고 돈이 들어간다"고 했다. 국수의 정수(精髓)인 셈이다. "일본 사람들은 고급 소면은 바로 먹지 않아요. 와인처럼 1년, 2년 묵혀서 먹죠. 그리고는 양념도 거의 없이 그저 면의 맛에만 빠져듭니다."

    우리 국수의 세계화 가능성에 대한 의견은 유보적이었다. 그는 냉면보다는 차라리 비빔국수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국물에 얼음을 띄워 먹는 국수는 전 세계에서 냉면이 유일하다"면서 "하지만 면의 텁텁한 촉감이 세계인의 입맛을 두루 충족시키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매콤한 양념이 쫄깃한 국수와 빚어내는 화학작용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는 비빔국수가 더 매력적일 것 같습니다."

    그의 다음 프로젝트 또한 음식과 관련된 것. 생선이 주제다. "생선을 잡고 요리하는 방법을 통해 유추해보는 문명의 특질"에 관한 내용이다. 《누들 로드》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점은 이런 것. "이번에는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로 결론지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바다 오염 때문입니다. 문명을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가 안전하게 먹을 음식은 육지뿐만 아니라 바다에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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