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수학을 만나면 뜬다

    입력 : 2010.02.21 21:43 | 수정 : 2010.02.21 23:38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댄 브라운 '로스트 심볼', 이선영 '천년의 침묵'…
    수학 지식 인용하거나 수학史 실재 사건 등장 "소설의 영역 확대 과정"

    수학 지식을 인용하거나 수학사(數學史)에 실재했던 사건을 모티프로 쓴 소설들이 최근 국내·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문학의 새로운 흥행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최고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1Q84》를 비롯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최신작 《로스트 심볼》, 독일에서 70만부 이상 팔린 다니엘 켈만의 장편 《세계를 재다》 등이 해외문학에서 수학을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이정명의 장편 《뿌리깊은 나무》와 지난달 출간된 이선영의 장편 《천년의 침묵》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소설가 지망생인 《1Q84》의 남자 주인공 덴고(天吾)의 직업은 수학강사다. 문학상에 응모한 후카에리라는 여자의 소설을 당선작 발표 전까지 개작해 달라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그녀를 만난 자리에서 덴고는 수학이 문학과 닮은 점을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눈다. 덴고는 "내게는 (수학이) 바흐의 평균율 같은 거야. 싫증나는 일이 없어. 항상 새로운 발견이 있지"라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수학은 바로크 음악이 지닌 예술의 경지에 비유되고, 풀이 과정은 미지를 향해 나아가는 인생의 여정을 상징하는 문학적 장치로 해석된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2000년대 독일어 문학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켈만의 《세계를 재다》는 수학자 가우스와 지리학자 훔볼트를 등장시켜 근대 서양철학의 두 기둥인 경험론과 합리론이 경쟁해 온 유럽지성사의 흐름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훔볼트가 세계를 직접 발로 답사하며 지도를 만드는 것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한 반면, 가우스는 방안에 칩거하며 오직 수식 계산만으로 세계의 크기를 재고 우주의 질서를 이해한다.

    전문적인 수학 지식을 활용해서 줄거리를 이끌어나가는 소설도 있다. 댄 브라운의 신작 《로스트 심볼》과 이정명의 장편 《뿌리깊은 나무》는 마방진(魔方陣·정수를 n행 n열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나열하여 가로·세로·대각선의 합이 모두 같아지도록 한 것) 풀이가 소설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단서로 제시된다. 댄 브라운은 《로스트 심볼》의 한국어판 발간을 계기로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수학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퍼즐 놀이를 즐겼던 개인적 취미를 소설 쓸 때도 활용한다"고 밝혔다.

    세종시대에 한글 창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궁중 암투를 그린 《뿌리깊은 나무》는 연쇄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마방진을 풀이하는 과정을 통해 범인을 추적하고, 《다빈치 코드》는 루브르 박물관장이 살해당하면서 피보나치 수열(첫 번째 항의 값이 0이고 두 번째 항의 값이 1일 때 이후의 항들은 이전의 두 항을 더한 값으로 만들어지는 수열)에 따라 바닥에 숫자를 쓰고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2009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인 《천년의 침묵》은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 독자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수학적 오락을 제시한다. 동시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수학 공식을 발견한 수학자라는 영광의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권력과 명예욕과 지식욕의 소용돌이를 통해 인간세계의 작동 방식을 탐색한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는 "그동안 미술과 철학, 영화 장르와 소설의 결합이 주류였는데 최근 들어 수학적 세계관과 철학으로까지 소설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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