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환상의 끝은 '별것 아닌 현실'이라는 거

    입력 : 2010.06.05 03:03

    올빼미의 없음
    배수아 소설집 | 창비 | 336쪽 | 1만1000원

    배수아(45)씨는 의도적으로 스토리의 농도를 묽게 하되, 그 위로 특유의 몽환적이고 모호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소설 언어의 매력을 풀어놓는다. 8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은 2000년대 들어 배수아 소설이 지향해 온 독특한 미학을 한층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수록작 '양의 첫눈'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남자 '양'이 옛 여자친구인 미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뜻밖의 편지를 받고 그녀를 기다리 사이 빠져든 기억 속의 풍경을 그린다. 그 기억은 논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본 아름다운 장면들에 대한 인상들이다.

    소설은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그런 양의 내면 풍경을 스케치한다. 그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지켜보게 된 소년에게서 자의식 없는 행동의 천진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이런 자의식 진공상태는 길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양은 가슴이 조여들 정도로 안타까운 감정의 홍수에 북받쳤다.'(25쪽) 또한 그는 호숫가에서 만난 청춘 남녀를 어느 겨울의 한 생일파티에서도 만난 적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닌 '배타성과 극도의 수줍음의 육체'가 그 파티장 밖 지붕 위로 내리는 하얀 눈의 이미지와 결합하며 양에게 어떤 야릇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잠깐 졸던 양은 문득 미라가 집에 들어와 마실 것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 그 장면은 양이 '숨막혀 하면서 여러 번 상상하고 또 상상한 순간'(33쪽)이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모양을 보니 현실은 역시 별것 아니며 고작 모든 예상된 상상의 평범한 아류'라고 자각한다. 평범한 아류인 듯한 그녀의 등장 순간이 소설 밖의 일상이라면 배수아는 별것 아닌 그 현실에 꿈과 환상을 중첩시키고 마침내 그것에 매혹되었다고 고백하는 진술 자체로 소설의 서사를 압도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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