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라 썼지만 현실이라 읽힌다

    입력 : 2010.05.31 03:05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이준일씨
    '치우와 별들의…' 속편 '치우와 파수꾼의 탑' 출간
    수심 1만m 영화 뺨치는 마법 대결
    탐욕·독선… 인간의 양면성 파헤쳐

    장편 판타지 '치우와 별들의 책'으로 지난해 제1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준일(41)씨가 치우의 두 번째 모험을 그린 속편 '치우와 파수꾼의 탑'(문학수첩)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마법의 땅 가이아랜드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현실세계로 돌아온 치우가 가이아랜드를 빠져나온 악당 마법사들과 재대결을 벌인다. 작가 이씨는 "전편에서는 태평양의 좁은 마법사 섬이 배경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서울과 뉴욕 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바다 속 깊은 해연(海淵)과 북극까지 오가는 큰 스케일로 전개된다"고 말했다. 소설 무대를 피터팬의 네버랜드 같은 상상 속의 공간 대신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로 한 것에 대해 작가는 "탐욕, 독선(獨善), 권력욕과 같은 인간세상의 어두운 모습을 보다 적나라하고 현실감 있게 다루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치우가 악당 메데스티를 물리치고 서울로 돌아간 뒤 잠시 평온한 듯했던 가이아랜드는 그들을 인간세계와 분리해 주던 마법장막에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 둘 구멍이 뚫리며 위기로 빠져든다. 땅을 풍요롭게 해 주던 마법력이 약해지며 살기 힘들어지자 마법사들은 인간세계를 차지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부활한 메데스티가 "가이아랜드를 버리고 인간의 땅을 차지하자"고 선동하자 일부 마법사들이 동조해 인간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치우의 단짝인 올리비아는 가이아랜드에 닥친 위기를 치우에게 전하기 위해 섬을 떠난다.

    한국의 마법 소년 치우가 주인공인 판타지 소설 속편을 낸 이준일씨는“다양한 마법 못지않게 그 마법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도사린 탐욕에 큰 비중을 두고 썼다”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gobong@chosun.com
    소설은 한바탕의 액션영화를 연상케 하는 사건들의 연속과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을 통해 서사적 재미를 한껏 끌어올렸다. 특히 수심 1만 미터 아래 비티아스 해연에서 벌어지는 치우와 메데스티의 마법 대결은 전편의 용암감옥 전투에 비견되는 짜릿한 스릴을 선사한다. 심해저에 도달한 치우는 물이 침범하지 않는 이상한 공간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수천년 전 파수꾼들이 세워 놓은 탑을 발견한다.

    '파수꾼의 탑'편은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서사적 흥미가 어우러진 탐색을 전개한다. 착하지만 유약한 인물인 치우의 영혼과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로딘의 영혼이 번갈아 치우의 몸을 차지하고, 우여곡절 끝에 치우를 만난 올리비아는 치우 옆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올리비아와 갈등한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모습을 한 올리비아를 의심하는 대신 "혹시 내가 기억까지 복제한 가짜인 건 아닐까"라며 오히려 자신을 의심한다. 올리비아의 진실에 대한 궁금증은 소설이 이어지는 동안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를 끝까지 붙잡아두는 장치이기도 하다.

    치우와 대결하는 메데스티 역시 가이아랜드를 구해낼 메시아적 측면과 세계를 지배하려는 권력자적 속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가이아랜드의 마법사들에게 새 땅을 마련해 주겠다는 메데스티의 약속이 오히려 인간을 마법의 땅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의도했던 것과 달리 마법사들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설정이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메데스티를 따라 인간세계를 침범하는 마법사들도 이기적인 생존욕구와 윤리적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존재로 그려진다. 소설은 '메디스티를 따르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119쪽)라고 옹호하면서도 '메디스티가 그렇게 믿도록 교묘하게 유혹한 것'이라고 서술함으로써 잘못된 지도자를 따르는 어리석음에 대해 경고한다.

    이번 이야기를 끝으로 가이아랜드에서 비롯된 치우의 모험은 끝을 맺는다. 작가 이준일씨는 "치우는 여전히 등장하지만 전혀 다른 주변 인물들과 배경이 나오는 새로운 시리즈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