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밖에 생명이 있더라

    입력 : 2011.03.19 03:01

    팀 넌 제공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제이 그리피스 지음|전소영 옮김
    알마|672쪽|2만8000원

    7년 동안 그녀는 툭하면 짐을 꾸려 외딴 땅으로 훌쩍 떠났다. 깊은 물에 악어가 잠긴 아마존 밀림, 천지간이 하얗게 얼어붙은 북극, 뜨거운 모래가 몸을 뒤트는 호주의 사막에 갔다. 웨스트파푸아 밀림에서 식인종과 노래를 부르고, 배(船) 위에서 나고 죽는 인도네시아의 바다 집시들과 대왕고래의 점프를 바라봤다. 영국에 돌아오면 오래된 사과밭 헛간을 개조한 작업실에 틀어박혀, 이메일도 안 열고 전화도 안 받고 자기가 보고 듣고 만지고 기억한 것을 기록했다.

    이 책은 영국 논픽션 작가 제이 그리피스(Griffiths·46·사진)가 공기·물·불·흙 등 세상을 이루는 네 가지를 찾아 죽도록 고생하며 인적 드문 야생지를 방랑한 기록이다.

    그녀는 현대 사회를 '모든 것이 복도로 구획된 세계'라고 요약한다. "관습의 복도, 한 학기에서 다음 학기로 연결된 복도,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통하는 복도, 적당히 수학을 공부하다가 적당한 회계사와 결혼으로 이어지는 복도."(17쪽)

    작업실에서 전화를 받은 그리피스는 "꼭 거창한 환경론자가 아니라도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야생에 향수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도 같은 힘에 이끌려 미개지 깊숙이 길을 잡았다. 아마존에서 그녀는 마체테(낫)로 길을 내는 원주민들을 뒤따라 끝모를 밀림 속을 걸었다. 안내인이 가느다란 실로 펜 끝에 묶어준 반딧불이가 깊은 밤 혼자 깨어 있는 그녀의 공책에 은은한 초록빛을 뿌렸다.

    그리피스는 야생을 보는 서구의 시선에 분개한다. 백인들이 '황무지'라 부르는 것은 자기 앞에 펼쳐진 게 뭔지 모르는 무식의 소치다. 야생은 생명으로 충만하고, 원주민은 그 의미를 안다. 이누이트족은 1년을 13개의 달로 쪼갠다. '태양이 있음 직한 달' '바다표범 새끼가 태어나는 달' 같은 이름에 북극에 대한 이해가 함축돼 있다.


    북극과 아마존, 사막을 넘나든 영국 작가 제이 그리피스는“세상에는 딱 두 가지 진영이 있다. 생명을 구하는 진영과 생명을 짓밟는 진영”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알래스카 밤하늘을 수놓은 극광(오로라). /AP

    백인들이 서구식 생활을 강요해 이누이트 젊은이들은 얼음 땅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컸다. 얼음 땅에 못 나가니 좁은 마을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다. 한때 광활한 설원을 누비던 종족이 하릴없이 정크푸드나 축내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리피스는 "별 아래 텐트를 쳤다가 새벽이 오면 훌쩍 떠나는 삶이야말로 가장 밝게 타오르는 산불 같은 삶"이라고 했다. 그녀는 히드로공항에 돌아올 때마다 "숨막히는 느낌이 든다(airlessness)"고 했다.

    그리피스는 진지한 문장을 촘촘하게 써내려가다 불쑥 독자를 웃긴다. 이누이트족은 식물이 자라지 않는 섬을 '이쿠틱사크타이투크'라고 부른다. '똥 닦을 것 없다'는 뜻이다(241쪽).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