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좋은 것'보다 '남보다 좋은 것'을 소비하는 인간

    입력 : 2011.03.19 03:01

    사치열병
    로버트 프랭크 지음|이한 옮김|미지북스|552쪽|2만2000원


    1980년대 초반, 한국의 청소년들은 '나이키 고민'에 빠졌다. 당시 기차표, 범표 같은 운동화와는 비교가 안 되는 가격의 고급 가죽 운동화 나이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단숨에 친구들의 눈을 끌 로고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에게 그런 비싼 운동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지만 그것을 갖고 싶은 '원하는' 마음 자체를 어쩔 수가 없었다.

    미국 경제학자로 코넬대 교수인 저자는 미국에서 1999년 발간한 이 책(원제:Luxury Fever)에서 '필요(need)가 아니라 원하는(want) 것을 구매'함으로써 벌어지는 '사치열병'을 동물행동학과 진화심리학의 방법론을 동원해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89.95달러에 사서 오래 사용한 가스 그릴이 고장 나 새것을 사기 위해 시장에 갔다가 혀를 내두른다. 비슷한 기능의 그릴은 700달러대이고, 일반적으로는 2000달러 이상 5000달러짜리까지 팔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치성 소비는 넘쳐났다. 최고급 시계, 요트, 대저택, 별장…. 문제는 이런 사치성 소비가 순자산 3000만달러 이상의 '수퍼 리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고 부자들의 소비행태는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져갔다. 1990년대 말 미국에서 지어지는 집의 평균 넓이는 1950년대에 비해 2배가 됐다. 요컨대 소비행태는 타인에 의존적, 다시 말해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과소비' '사치열병'에 대해 '부도덕하다'고 비판만 해서는 해결책이 없다.

    하버드대 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에게 '자신은 5만달러를 버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2만5000달러를 버는 세계와 자신은 10만달러를 벌고 다른 사람들은 25만달러를 버는 세계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더니 56퍼센트가 첫 번째 세계를 골랐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과반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동물과 인간도 비교해본다. 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사슴의 한 종류인 엘크의 수컷들은 뿔이 큰 쪽으로 진화해왔다. 암컷의 눈을 끌어 많은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에서 큰 뿔은 위험하다. 포식자에게 쫓길 때 장애물이 될 뿐이다. 수컷 공작의 꼬리 깃털도 마찬가지이다. 개체의 이익이 전체로서는 멍청한 짓이 되는 것이다. 엘크와 공작은 진화의 결과라고 치더라도, 인간의 행동은 어떤가? 저자는 팝가수 공연장의 예를 든다. 몇몇 관객이 가수를 더 잘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다가 넘어지는 소동이 벌어진다. 뭐가 다른가?

    '남'을 신경 쓰고, 필요보다 원하는 것을 구매하고 선망의 대상을 좇는 동안 1990년대 말 8조달러의 국민소득을 가진 미국이 사회간접자본을 보수할 비용과 사회복지 비용이 부족하고 "가족, 친구들과 보낼 시간을 더 낼 수 없는 척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문제의 본질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개인은 오직 자신의 선택만을 통제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선택까지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소비에 누진세를 강화하자는 쪽이다. 10년 전 미국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그 사이 벌어진 글로벌 경제위기의 구체적 배경, 인류가 본능적으로 이어온 '사치 열병 유전자'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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