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초상집' 언제 가보셨나요?

    입력 : 2011.03.26 03:02

    "연애도 결혼도 돌잔치도 '업체' 없이 못 하는 인간"

    보이지 않는 주인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오준호 옮김
    지식하우스|398쪽|1만8000원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마지막으로 장례식장이 아닌 진짜 '초상집'에 가 본 게 언제였는지?

    요즘 우리는 '업체' 없이 아무것도 못하고 산다. 결혼식은 웨딩플래너, 돌잔치는 이벤트회사, 수능 대비는 입시학원, 구인·구직은 헤드헌터에게 맡긴다. 세상을 떠나는 노인들은 가족 대신 상조회사 직원 손에 마지막 옷을 입는다.

    이처럼 삶의 모든 국면에 업자가 끼어들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는 인생도 업자처럼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가령 우리는 저녁 먹으면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일을 '네트워킹'이라고 부른다. 앞집 여자·경비 아저씨·수퍼 아줌마와는 말 한마디 안 나누면서 블로그와 트위터는 열심히 한다. 저자 러시코프는 자기 얘기를 예로 든다. 어느 날 그는 뉴욕 브루클린 자택 앞에서 강도를 만나 의료보험 카드만 빼고 탈탈 털렸다. 이 사실을 동네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띄웠더니 항의 이메일이 빗발쳤다. "동네 이름을 공개하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몰라?"

    러시코프는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미국의 좌파 논객이다. 그는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기업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리는 단순히 기업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기업의 가치를 내면화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살게 됐다. 가령 우리는 너나없이 아파트 평수에 연연한다. 단순히 부동산 가치에 불과한 것을 '나 자신의 가치'인 양 착각해 어깨를 축 늘어뜨리기도 하고, '에헴!' 하고 잘난 척 하기도 한다. 우리는 출세가 곧 행복인 양 착각한다.

    도처에서 광고가 우리에게‘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더글러스 러시코프는“그 뒤에는‘○○제품을 돈 내고 사면…’이라는 말이 생략돼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2009년 런던 미술품 경매장에서 한 관객이 앤디 워홀의 작품‘1달러 지폐 200장’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모습. /AP

    러시코프가 보기에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코포라티즘(Corporatism)'탓이다. 코포라티즘은 기업과 정부가 결탁해 정치·사회·문화·경제 전반에 걸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체제와 그 이념이다. 코포라티즘은 우리 내면에 스며들어 우리가 세계와 우리 자신을 보는 렌즈가 됐다. 우리는 돈이 없는 세계, 회사가 없는 세계를 좀처럼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러시코프가 보기에 세상이 회사 중심으로 돌아간 것은 인류의 역사 중 극히 짧은 기간(르네상스 이후 600년)에 불과하다. 그는 세계사를 죽 훑으며 갖가지 사례와 통계를 들어 자기주장을 뒷받침한다.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을 '발전' 항목이 아니라 '재앙' 항목에 분류하는 지식인은 러시코프 말고도 많다. 이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교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한 책들도 많다. 그에 비해 러시코프의 책은 거친 들길을 달리는 지프처럼. 논리가 한두 단계 껑충 비약하는 대목이 많다.

    이 책의 장점은 다른 데 있다. 러시코프는 살기 위해 버둥대는 우리들에게 불쑥 거울을 내밀고 "얼굴에 묻은 검댕을 좀 보라"고 한다. 이웃이 강도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웃의 안위보다 집값부터 걱정하는 행동이 바로 그 검댕에 해당한다. 요컨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세계가 우리들을 어떻게 일그러뜨리고 있는지 생생하게 예를 들어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책이다. 재치 있고 시원스러운 문장이라 단숨에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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