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가인가, 침략자인가… 두 얼굴을 가진 일본의 賢者

  • 한상일·국민대 명예교수

    입력 : 2011.04.09 03:15

    "미개한 조선국… 이를 유인하고 이끌어야 한다" -후쿠자와 曰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야스카와 주노스케 지음|이향철 옮김|역사비평사 | 420쪽|2만3000원

    일본의 최고액권인 1만엔권에 얼굴이 실린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는 우리에게도 낯선 인물이 아니다. 한말의 격동기 후쿠자와는 개혁과 개화를 꿈꾸었던 김옥균·박영효·유길준 등과 관계를 맺으면서 조선에서 친일개혁을 지원했다. 또한 수제자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角五郞)를 조선에 파견하여 한국 최초의 신문이라 할 수 있는 '한성순보'를 주관하면서 조선의 정세변화를 주시했다. 그리고 막후에서 갑신정변에 깊이 관여했고, 정변이 실패하자 '탈아론(脫亞論)'을 발표하여 조선침략에 앞장선 인물이다.

    역사비평 제공
    일본 안팎에서 후쿠자와에 대한 평가는 '찬미' 일변도이다. 현자(賢者), 국민적 영웅, 철인, 사상가…. 그러나 좀 더 가까이서 관찰하면 후쿠자와는 한편으로는 계몽가, 천부인권론자, 시민적 자유주의의 선구자라는 얼굴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천황론자, 군국주의자, 아시아침략의 선구자라는 야누스와 같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후쿠자와에 대한 평가의 주류는 전자에 속한다.

    야스카와 주노스케의 책은 후자의 후쿠자와 상(像)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저자 야스카와는 '저변(底邊)민중'의 시각에서 '민중사상사'의 작업에 천착해온 학자이다. 그는 1970년 이후 '정점(頂點)사상가' 후쿠자와의 교육 사상을 재점검함으로써 후쿠자와 평가의 균형을 잡는 데 기여했다. 아시아에 대한 후쿠자와의 언설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이 책도 같은 맥락에서 후쿠자와의 신화와 허상을 벗기고 있다.

    이 책은 서장과 본론 4장으로 구성돼 있다. 서론에서는 '일신독립해야 일국독립한다'는 후쿠자와의 유명한 명제에 대한 오독을 포함하여 후쿠자와 연구의 불가사의한 7개의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1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바뀐 후쿠자와 자신이 글을 통해, 마루야마 마사오의 맹신적 후쿠자와 예찬론을 공박하고 있다. 이 책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2장과 3장은 후쿠자와의 아시아 인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임오군란 이후 조선의 정치·사회변동 때마다 발표한 그의 입론에 나타나고 있는 조선(중국, 아시아) 멸시와 침략의 후쿠자와 상을 보여주고 있다. 4장에서 저자는 메이지 시대에 움트기 시작한 아시아침략사상은 결국 '어두운 쇼와'로 이어졌고, 후쿠자와가 그 중심에 있다고 고발한다. 그리고 부록으로 포함된 '후쿠자와 유키치 아시아인식의 궤적'은 후쿠자와뿐 아니라 메이지 시대 일본의 아시아 정책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후쿠자와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그는 메이지 일본의 대외정책과 문명개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부강개명'이라는 메이지의 국가목표를 성취하는 데 크게 기여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언설을 종합 분석해보면, 서양 제국주의를 모방한 일본의 보다 추악한 제국주의 또한 후쿠자와의 모습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후쿠자와의 공과를 동일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는 연구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고, 또한 저자가 기대하고 있는 '아시아와 일본의 역사인식의 심각한 균열과 틈새'를 메우는 데 중요한 길잡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침략, 조선·청 비하 발언]

    ▲"조선국(…) 미개하므로 이를 유인하고 이끌어야 하며, 그 인민 정말로 완고하고 고리타분하므로…."(1882.3)

    ▲"조선은 본래 논할 가치도 없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당면의 적은 지나(중국)이기 때문에…."(1884.12)

    ▲"조선국(…) 나라이면서 나라도 아니고, 정부이면서 정부도 아니다."(1894.7)

    ▲"이런 거지들을 상대로 싸우다가는 벼룩이 옮길 우려도"(1894.7)

    ▲"(조선의) 지나 숭배의 미몽을 깨닫게 하고 분쇄하는 데는 탄환 화약보다 나은 것이 있을 수 없다."(18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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