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뿔 난' 연암 박지원… 현감 생활 4년을 엿보다

    입력 : 2011.04.16 03:02

    뿔뱀
    표성흠 지음|시작|303쪽|1만2000원

    안의(경남 함양) 현감으로 내려간 연암 박지원(1737~1805)이 부임 첫날 지역 터줏대감들과 술자리에 앉았다. 기싸움의 순간이다. 놀이나 하나 하자며 엉뚱하게도 글짓기 경연(競演)을 시작한다. 벌칙은 술, 운자(韻字)는 '지'.

    "술술 잘 넘어가는 안의 막걸리/안주도 좋아라. 황석산 멧돼지." "촌사람 섣불리 보지 마소/ 안의 사람들 정말 무섭지" "아무리 짝사랑이라도 목은 왜 매나/ 벗겨나 보든지 한 번 대어나 보고 죽지"(50~51쪽)

    어찌 보면 한낱 풍류를 겨루는 대목에 불과하지만, 순탄한 길을 마다하고 굳이 세상과 맞서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연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당연히 연암이야말로 가장 문학적인 텍스트다. 이 매력적인 텍스트를 작가 표성흠은 "엉덩이에 뿔 난 뱀", 뿔뱀으로 불렀다. 뿔 달린 뱀은 여의주를 얻으면 용이 되고, 시대를 잘못 만나면 이무기가 되는 것. 시선에 따라, 세계관에 따라 평가가 갈릴 연암의 삶인 것이다.

    작가는 연암의 안의 현감 4년 기간을 점묘법으로 형상화한다. 북벌(北伐)에서 북학(北學)으로 분위기가 바뀐 정조(正祖)의 조선. 우리가 알다시피 북학파 박지원은 청나라를 다녀와 자신이 보고 배운 것을 이 4년 동안 실천에 옮겼다. 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소설로 옮길 것인가. 작가는 현감의 일대기를 충실하게 묘사하면서도, 학자로서의 연암과 현실 참여자(현감)의 사이에서 오는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게 이 연암 텍스트의 매력이다.

    이런 대목이 있다. 파격의 글쓰기로 소위 '문체반정(文體反正)'의 당사자였던 연암과 경윤이라는 스님의 대화. 스님은 몇 대에 걸쳐 다듬은 승안사 미륵불을 완성하자마자 다시 없었던 일로 한다고 했다. 만들다 보니 천상 영감을 닮은 천하태평 인간의 모양새더라는 것. 부처는 부처답기를 바라는 대중이, 그 인간 모양의 미륵불을 원치 않더라는 것이다. 낯선 것에 대한 매혹이 아니라, 낯선 것에 대한 거부인 셈.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자들의 삶은 늘 그렇듯 '뿔뱀'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5000만원 고료 연암문학상 수상작. 심사위원회(이어령·윤후명·정영문·김춘식)는 "실학의 구현을 형상화한 문학"이라며 "이른바 '문자향(文字香)'을 추구하면서 현실을 바른 눈으로 보고 헤쳐나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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