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이 고비란다 읽어라, 아이야

    입력 : 2011.04.16 03:03

    조선 500년 명문가 교육 1원칙
    독서는 읽고, 외우고 생각한 뒤 글을 짓는 게 순서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
    이상주 지음|다음생각|340쪽|1만4000원

    전남 강진으로 유배 간 정약용(1762~ 1836)이 두 아들에게 부친 편지글 '기이아(寄二兒)'에 나오는 구절이다. "새해가 밝았다. 신년을 맞는 사대부는 반드시 마음과 행동을 새롭게 한다. 나는 어렸을 때 연초에 1년 동안의 공부계획을 세웠다. …지금까지 너희에게 편지로 독서를 장려했다. 그런데 너희는 책을 읽으면서 생긴 의문이나 궁금증, 역사에 대한 논란거리에 대해 단 한 번도 물은 적이 없다. 어째서 너희는 내 말을 허투루 듣는다는 말이냐."

    지난 2002년 10월 서울 계성초등학교 학생들이 개교 기념행사에서 도포 차림에 갓을 쓰고 과거시험을 재현하고 있다. /정경렬 기자
    그 정약용이 "문자가 만들어진 이래 종횡으로 수천년과 3만 리(里)를 다 뒤져도 대단한 독서가는 김득신이 으뜸"이라고 평가한 김득신(1604~1684)은 사실 영재 집안의 둔재였다. 할아버지 김시회는 25세에, 아버지 김치(金緻)는 20세에 문과 급제한 천재였다. 하지만 어릴 때 앓은 천연두 탓인지 아둔한 편인 아들에게 아버지 김치는 "공부는 꾸준히 하는 것이다. 과거(科擧)가 목적이 아니다"라며 격려했다. 주위의 신뢰 속에 김득신은 독서를 계속해 59세에 문과 급제하는 인간승리를 이룬다.

    스스로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看書痴)'라 이름 붙인 이덕무(1741~1793)는 한양 한복판에 살아 땅도 없었고 돈벌이도 하지 못했다. 겨우 아내의 삯바느질로 입에 풀칠만 했다. "매서운 추위로 한밤중에 벌떡 일어났다. 한서(漢書) 한 질을 이불 위에 차곡차곡 덮어 추위를 다소 막았다." 며칠 뒤엔 논어 책으로 바람을 막는다. 이덕무는 자신의 행동이 흡족스러워 '한서 이불, 논어 병풍'이라 했다.

    책은 조선 명문가에서 행해진 독서방법과 독서교육을 담고 있다. 모두 55명의 '독서 지존(至尊)'이 등장한다. 조선 명문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문과 급제자와 고위직 인사, 청백리(淸白吏) 수 등도 중요하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주요 덕목은 문형(文衡·글을 평가하는 이), 즉 대제학(大提學)의 배출경험이다. 문형은 독서휴식제인 '사가독서(賜暇讀書)'의 경험이 결정적이다. 조선이 그만큼 독서를 제1의 덕목으로 봤다는 뜻이다.

    책엔 구체적 지침도 많다. 기대승(1527~1572)은 "책은 반드시 외어야 하고 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읽고 생각한 뒤 글을 짓는 게 순서다"라고 말했고, 홍대용(1731~1783)은 "독서할 때 처음이 가장 힘들다. 이 괴로움을 겪지 않고 편안함만 찾는다면 재주와 능력을 개발하지 못한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인내하면 열흘 안에 반드시 좋은 소식이 있다"며 '10일 고비설'을 폈다.

    이인상(1710~1760)은 매일 30편 이상의 글을 읽었다. "나는 주역을 하루에 한 괘(卦)씩 읽지. 아침에 10번, 낮에 10번, 또 등잔불 켜고 10번 읽는다네." 이경근(1824~1889)은 "무릇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려면 반드시 아버지나 형이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 그 후에 아이에게 공부할 것과 금지할 것을 말해야 제대로 이루어진다"며 '부모 모범설'을 설파했다.

    인물 55명의 독서편력이라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상관없다. 너무 좋은 말들만 반복되는 게 흠 아닌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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