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35편… 깔끔하게 타올라 잿더미조차 없는 글

    입력 : 2011.04.16 03:03

    "가장 훌륭한 사람은 유쾌하고 명랑하고 다정하다"

    런던통신 1931-1935

    버트런드 러셀 지음|송은경 옮김|사회평론|560쪽 | 1만4800원

    컴퓨터 발명의 뿌리가 되는 수학의 체계를 세웠고, 핵의 위협과 싸우는 '100인 위원회'를 이끌었으며, 반핵 시위를 주도해 아흔이 다 된 나이에 금고형을 선고받고도 유쾌히 웃었던 사람.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에 개입하고 동서 양(兩) 진영에 군비축소를 촉구했으며, 베트남전의 민간인 희생을 고발한 인물. 정확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문장을 구사하며 1950년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문필가. 1963년 90세 때 인터뷰한 미국 기자가 "불꽃만으로 이루어진, 타고 남은 재라곤 하나도 없는 이"라 평가한 사람, 버트런드 러셀(1872~1970).

    버트런드 러셀.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하루 평균 3000단어 넘게 글을 쓰며 '서양철학사' '행복의 정복' '게으름에 대한 찬양'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등 40여 권의 저서를 남긴 러셀은 무엇보다, 속이 찬 '반골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가 1931년에 미국 허스트 그룹 산하 신문의 고정 필자로 4년간 고정 칼럼을 썼다. 신문은 당대 현실에 가장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거기 실린 글은, 시대를 초월해 자리 잡은 러셀의 여타 고전과는 또 다른 맛이다.

    '런던통신 1931-1935'는 그 에세이 135편을 모아 1975년에 펴낸 책이다. 마지막 칼럼이 쓰인 뒤 40년 후에 출판된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현재적'이다.

    여교사에게 립스틱을 바르지 못하게 한 1930년대 영국 사회의 단면을 포착한 '립스틱을 발라도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로 말하자면, 가장 훌륭한 사람에 관해 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유쾌하고 명랑하고 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니오'보다는 '예'란 대답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특히 아이들에게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교육 당국이 교사의 도덕적 '미덕'을 강요하며 인간적 즐거움을 앗아가면 결국 아이들에게까지 악영향이 미친다고 그는 말한다.

    무엇보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건 그의 세련된 풍자와 유머 감각이다. "'오, 러셀 선생님, 책을 그렇게나 좋아하신다면서요.' 감정 표현이 유별난 안주인이 이렇게 말할 때면 존슨 박사(Samuel Johnson·1709~1784) 식으로 대꾸하고 싶어진다. '부인, 저는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때는 절대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매우 경솔한 인간 분류법').

    물 흐르듯 유려한 번역이 수준급이지만, "독자들을 실망시켜본 적이 없는 영어 구사력"이 궁금한 이라면 영어 원본('Mortals and Others')을 구해볼 일이다. 지난 2005년 발간된 '인간과 그 밖의 것들'(오늘의책)이 이번 책의 절반 분량에 해당한다는 점이 '옥에 티'이다.

    [러셀의 말말말]

    "나는 1820년 무렵에 뉴욕주 북부에 있는 한 호숫가에 살았던 어느 여성 예언자를 특히 높이 평가한다. 그녀는 무수한 추종자들에게 자신에게는 물 위를 걷는 능력이 있다고 천명하고 어느 날 오전 11시에 그 능력을 실제로 보여주겠노라고 제안했다. 정해진 시각이 되자 신심 깊은 지지자 수천 명이 호숫가에 운집했다. 그녀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으리라고 여러분 모두 굳게 믿습니까?" 그들은 한목소리로 응답했다. "믿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선언했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물 위를 걸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는 더욱 믿음이 깊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지적(知的) 쓰레기의 개요'

    "남성이 지배했던 옛날에는 문제가 간단했다. 남성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졌고 여성은 복종했다. 이런 식으로 인류의 절반이 행복했고 나머지 절반은 불행했다. 그러나 현대로 넘어와 남녀 간에 정의(正義)가 요구되면서 이러한 구도가 불가능해졌다. 개혁가들은 여성도 남성만큼 행복해지기를 의도했겠지만 실제로 맞이한 현실은 남성도 여성만큼 불행해졌다는 것이다."  ―'섹스와 행복'

    "영국에 사는 나로 말하자면 아버지가 급진파였으므로 노동당에 투표한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가 자유당 지지자였으므로 급진파가 됐고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가 휘그당 지지자였으므로 자유당 지지자가 됐다. 그리고 그분이 휘그당(노동당 원조) 지지자가 된 것은 선조들이 헨리 8세로부터 수도원 토지를 하사받았기 때문이었다. 나의 급진주의는 이처럼 금전상의 원인에서 비롯했으니 그럼 나는 보수당 지지자로 돌아서야 할까? 생각만 해도 심란해진다."  ―'우리가 투표를 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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