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천재가 나를 노래했다 그럴수록 내 인생은 아팠다

    입력 : 2011.04.18 03:02 | 수정 : 2011.04.18 04:10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이 동시에 사랑했던 여자… 패티 보이드 회고록 내
    "천재는 어른이 되길 멈춘철부지 어린애 같아… 나를 위해 작곡한 노래들도
    결국은 그들을 투영한 노래 '뮤즈'가 된다는 것? 황송하면서도 민망한 노릇"

    올봄 런던이 한 '왕년의 모델' 때문에 술렁거렸다. 30년 이상 좀처럼 언론을 만나지 않고 은인자중한 '그녀'가 자기 인생을 속속들이 털어놓은 회고록 '원더풀 투나잇―조지 해리슨, 에릭 클랩튼, 그리고 나'를 아이패드용 e북으로 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가 바로 1960년대 영국 톱모델 패티 보이드(Boyd·67)다. 그녀는 지난 2007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종이책에 자기 목소리를 입히고, 비틀스와 클랩튼의 동영상까지 곁들였다.

    패티 보이드는 비틀스의 '섬싱(Something·1969)', 에릭 클랩튼의 '레일라(Layla·1970)'와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1977)'의 주인공이다.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과 클랩튼이 동시에 사랑했던 '전설적인 뮤즈'.

    묻지 않곤 찾아가기 힘든 조용한 골목, 모란 나무 우거진 소박한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패티 보이드를 찾아갔다. 문이 열리자 67세의 뮤즈가 수레국화처럼 파란 눈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패티 보이드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등장하면서 우아한 정장을 입은 글래머 모델들의 시대는 갔다. 1960년대 디자이너와 대중은 옆집 소녀처럼 청순한 패티 보이드에게 열광했다.
    '순진한 소년' 조지 해리슨

    1962년 패티 보이드가 생머리에 깡총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나자 전 세계 여자들이 무릎을 덮는 플레어스커트를 단박에 벗어던졌다. 영국의 트위기와 더불어 세계적인 아이콘이었다.

    보이드가 조지 해리슨을 만난 것은 1964년. 비틀스가 3집 앨범 '하드데이스 나잇(Hard Day's Night)' 발매를 앞두고 동명의 영화를 찍었을 때 보이드가 출연했다. 촬영 첫날 해리슨은 보이드에게 "결혼해달라"고 했다. 보이드가 사양하자 해리슨은 "결혼이 안 되면 저녁이라도 어떠냐"고 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2년 만에 결혼했다. 방이 120개 있는 빅토리아 시대 저택에서 수시로 파티를 열었지만 결혼 이듬해(1967년)부터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정신적 샅바 싸움'을 벌이자 멤버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해리슨은 자기도 레넌·매카트니처럼 주목받고 싶어했다. 휴식을 찾으러 간 인도여행을 다녀온 후 해리슨은 보이드에게 "힌두 신화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수많은 후궁을 거느린 초월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얘기. 그는 이 말을 실천에 옮겼고, 그녀는 가방 하나 들고 미국의 에릭 클랩튼을 찾아갔다.

    '어둡고 뜨거운 남자' 에릭 클랩튼

    1968년 클랩튼 공연을 본 비틀스 멤버는 모두 그와 친구가 됐다. 파티에서 보이드를 본 클랩튼은 '친구 부인'에게 바로 빠져들었다. 1970년 클랩튼이 "들려줄 게 있다"면서 보이드를 런던에 있는 빈 아파트에 데려갔다. 미발표 신곡 '레일라'의 격렬한 기타 연주가 흘러나왔다. 보이드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그날 밤 파티에서 클랩튼은 해리슨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네 아내를 사랑해." 해리슨 부부는 클랩튼을 남겨두고 돌아왔다. 좌절한 클랩튼은 마약에 취했다. 73년 마약을 끊고 재기에 성공했지만 보이드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다. 해리슨에게 상처받고 가출한 보이드가 찾아오자 그녀를 얼싸안았다.

    "첫 결혼은 사랑, 두번째 결혼은 열정"

    보이드는 "첫 결혼에 사랑이 있었다면, 두 번째 결혼에는 열정이 있었다"고 했다. 보이드는 "에릭 클랩튼은 늘 뭔가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했다. 10대 미혼모의 사생아로 조부모 손에 큰 클랩튼은 옷도, 낚싯대도 좋은 걸 보면 수십 개씩 사들였다. 보이드는 "돌이켜보면 나에 대한 사랑도 중독의 일종"이었다고 했다. 보이드와 결혼한 클랩튼은 이번엔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술에 취한 클랩튼이 층계를 올라오는 소리를 들으며 공포와 절망에 질려 울곤 했다. 그가 그대로 곯아떨어지기만 기도했다. 그는 많은 경우 짐승(animal) 같았다."

    1985년 클랩튼이 "바깥에 아이가 생겼다"고 고백하며 두 사람은 이혼했다.

    ①결혼 직전의 조지 해리슨(왼쪽)과 패티 보이드. ②67세의 패티 보이드는“해리슨이 멀어져 갈 때,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클랩튼이 나를 붙잡았다”고 했다. ③에릭 클랩튼의 1980년대 공연 장면. /게티이미지 멀티비츠·김수혜 기자·AP


    "천재는 어린애… 뮤즈로 산다는 건 황송하고 민망한 노릇"

    보이드는 위자료로 방 두 개짜리 아파트 한 채와 약간의 생활비를 받았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세상사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친구들을 불러내 '지하철 타는 법'을 실습하는 식이었다.

    사진으로 새 인생을 살았다. 더타임스 등 주요 언론에 사진을 제공하는 프리랜서 사진가가 됐다. 2005~2006년 런던·뉴욕·샌프란시스코에서 '뮤즈의 눈으로 보다'전(展)을 열어 비평가와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녀는 "두 거장 중에서 '내 인생의 남자'를 꼽으라면 해리슨"이라고 했다. '사랑할 줄 아는 관대한 남자'이기 때문. 클랩튼과 결혼한 보이드에게 해리슨은 "내가 너무 나쁠 뿐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했고 둘은 평생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 반면 클랩튼에 대해 보이드는 "뜨겁고 열정적이지만 뭐랄까, 함께 살기 참 힘든 남자였다"고 했다.

    보이드는 "천재들은 철부지 어린애 같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어른이 되지 않고 어느 단계에 멈춰요. 수많은 예스맨이 그런 천재를 둘러싸고 비위를 맞추니까요. 천재는 자기도 모르게 '내가 최고로 중요한 인간이다. 뭐든지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죠."

    대중은 영원히 보이드를 '거장들의 뮤즈'로 기억할 것이다. 보이드는 "나는 나일 뿐"이라고 했다. "나를 위해 작곡한 노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투영하는 노래였을 뿐이죠."

    "인생이 아팠다"는 보이드에게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살아보니 인생은 후회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 '그냥 겪는' 거더라"고 했다. "싫든 좋든 내게는 '록 음악 사상 가장 화려한 삼각관계의 주인공'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렸어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죠. 뮤즈로 기억된다는 건, 황송한 동시에 뭐랄까, 약간 민망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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