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라… '매트릭스(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내용의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입력 : 2011.06.04 03:02

    인류와 함께 발전한 기술 시스템 '테크늄'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 건 역사적 진실… '기술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기술의 충격

    케빈 켈리 지음|이한음 옮김|민음사 | 496쪽|2만5000원


    많은 사람들이 위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날의 사회적 위험은 모두 화려한 현대 기술 탓이다. 문명의 이기라고 믿는 자동차 때문에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120만명이 사망한다. 극단적인 기술 혐오주의에 빠져 테러리스트 '유나바머(UnABomber)'로 전락해버린 미국의 천재 수학자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아니더라도 첨단 기술에 대한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끊임없이 팽창하는 기술이 자연을 파괴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약해서 결국에는 우리 영혼으로부터 자유와 주도권을 빼앗아버릴 것처럼 느낀다.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그런데 싸구려 운동화와 낡은 청바지 차림으로 아시아 오지(奧地)를 돌아다니며 힘든 삶을 고집하다가 적극적인 기술 옹호론자가 변신한 케빈 켈리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세계적인 IT 전문지 '와이어드(Wired)'의 공동 창간자였던 켈리에게 기술은 단순히 우리의 물질적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수준을 넘어서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정신을 일깨우고, 영감에 불을 지피고,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목숨을 구해주기도 한다.

    기술을 통제 불능의 '주인'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자신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지난 1000년 사이에 사회적, 종교집단, 국가 수준에서 새로운 특정 기술을 금지한 사례를 찾아보았지만 약 40건밖에 찾지 못했다고 한다. 과거 프랑스 필경사 동업 조합이 파리에 인쇄술이 도입되는 시기를 늦추려 애썼지만 그 기간은 겨우 20년에 그쳤다. 전기와 자동차를 거부하고 최소주의적 삶을 선택한 아미시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아미시파는 기술에 대해 확고한 목소리와 의지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조금 느릴 뿐이다. 1960년대 말에 등장했던 히피도 결국 선택적으로 기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1만년에 걸친 느린 진화와 200년간의 믿어지지 않는 발전을 거쳐 형성된 일종의 기술 시스템을 '테크늄'이라고 명명한다. 사람이 창조한 개별 테크놀로지의 합(合)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요동치면서 전 지구적으로 광범위하면서 동시에 대규모로 긴밀하게 상호연결된 종합 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테크늄은 기술의 산물인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문화, 예술, 사회 제도를 포함한 모든 지적 산물을 포함한다. 현대 정보화 사회를 가능케 한 소프트웨어, 법, 철학 개념처럼 무형의 산물 역시 그 안에 들어간다. 넓은 의미로 '문화'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런 테크늄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진화한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일반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개체주의에서 상호주의로, 에너지의 낭비에서 효율로, 느리고 작은 변화에서 더 큰 진화 가능성으로 변화한다. 테크늄은 더 많은 도구, 더욱 새로운 기술 혁신, 더욱 강화된 자기 연결을 부추기는 생성 충동을 가진 자기 창조와 조직화 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런 뜻에서 테크늄은 효율성·기회·창발성·복잡성·다양성·전문화·자유·상호의존·아름다움·직감력의 증가를 추구하는 생명과 닮은꼴이다. 비록 완전한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테크늄의 진화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테크늄은 이미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진 독자적 존재로 성숙해가고 있다. 자동항법 장치를 갖춘 무인 항공기는 상당한 시간 동안 공중에 떠다닌다. 인터넷 통신망은 자가 증식은 못 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반대로 컴퓨터 바이러스는 자가 증식을 하지만 스스로 개선을 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뇌에 있는 뉴런의 수에 버금가는 트랜지스터와 시냅스의 수에 버금가는 링크로 지구 전체를 포괄하는 통신망에서도 배아 단계이기는 하지만 기술적 자율성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제 우리도 테크늄이 생명과 마찬가지로 살아서 번성하고 싶어하는 기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나바머가 원했듯 우리가 현실적으로 모든 기술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은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진화한다. 이런 진화로 인해 복잡성이 증가하는 것은 우주적 필연이다. 테크늄의 진화 속도와 방향은 우리의 관심과 참여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스스로 테크늄의 진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공연한 종말론적 불안감에서 벗어나 인류의 미래에 불가피한 기술의 진보를 수용하여 우주에서 궁극적인 승자가 될 수 있다. 기술 문명을 통해 우리가 더 많은 현실적 자유를 획득했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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