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는 항생제와 함께 왔다

    입력 : 2011.06.04 03:02

    해방 직후 - 유랑인 늘면서 각종 세균·바이러스 함께 활개쳐, 유아사망률 세계 1위
    6·25전쟁 - 미군 "질병과의 전쟁" 국민 보건 터 닦아… 의약품 오·남용 악습 낳기도

    현대인의 탄생
    전우용 지음|이순|344쪽|1만5000원

    "○○에서 목격한 문제는 엄청났다. 병원들은 제 구실을 못했고, 어느 곳이나 분뇨 천지였으며, 물은 먹기에 부적합하고 그마저 부족했다. 거리는 굶주린 사람들로 넘쳐났고 길가에는 죽어 썩어가는 시체가 널려 있었다. 가축은 길에서 도살됐다. 악취의 도시였다. (…) 100대의 소 수레를 징발해 거리의 분뇨를 치웠다. (…) 가장 어려운 점은 거리에서 시체를 치우는 일이었다."

    1945년 9월 미군정기 군정단 보고서의 한 대목. ○○은 '서울'이다.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연간 6만명이 넘는다는 뉴스에 익숙한 대한민국의 어느 세대들에겐 믿을 수 없는 풍경이다.

    '현대인의 탄생'에서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해방 전후부터 6·25전쟁기까지 한국인이 근대 의학을 수용한 과정을 다룬 책이다. 의학판 '대한늬우스'를 보는 듯하다. 질병과 퇴치의 역사를 정리한 책인데 담긴 메시지는 다분히 인문학적이다. 근대 의료 도입사를 통해 본 대한민국 국민의 탄생이다.

    2차대전 이후 한국은 물론 유럽, 미국에서도 항생제가 남용되기 시작했다.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해방 직후, 한반도는 유랑인들로 술렁였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사람, 도시로 새 삶을 찾아나선 사람, 터전을 잃고 어디로 갈지 헤매는 사람, 모두 이동 중이었다. 1946년 말까지 일본에서 130만명, 중국에서 90만명, 남태평양제도에서 3만명이 귀환했다. 만주에서 국경을 넘어 오는 이들은 통계에도 안 잡혔다. 해방 후 1년 남짓 동안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가 늘었다. 사람만 들어온 게 아니었다. 옷과 짐, 머리카락, 혈액을 타고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도 함께 숨어들었다. 그리고 번식했다.

    여기에 굶주림은 영양실조, 면역력 약화로 이어졌다. 유아사망률은 세계 1위로 뛰었다. 1948년 신생아 44만명 중 돌을 못 넘긴 수가 18만명, 40%에 달했다. '회가 동한다'(회충이 움직인다)는 말은 '배고프다'와 동의어였다.

    결핵, 성병, 마약중독은 '3대 망국병'으로 꼽혔다. 해방 후 일본이 생아편과 모르핀을 헐값에 풀면서 중독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1949년 정부 추산 18만5000여명). 그 밖에도 독감, 폐렴, 두창, 발진티푸스, 디프테리아, 재귀열, 뇌염 등 온갖 질병들이 돌림노래처럼 반도를 휩쓸었다. 학생들은 백신 맞는 일이 일과였고, 도처에서 DDT(살충제)가 뿌려졌다.

    무지가 부른 의료·안전 사고는 줄을 이었고 엽기 사건까지 겹쳤다. 1948년 9월 27세 여인이 남편의 나병을 고치겠다며 영아를 토막 내 술에 담갔다가 적발됐다. 혼란기를 틈타 총기 사고도 빈발했다. 장덕수 송진우 여운형 김구가 모두 권총으로 암살당했다. 1948년 남로당이 '2·7 구국투쟁'을 선언한 뒤로는 총기 사망이 전염병 사망을 앞질렀다.

    6·25는 또 한 번의 의료 '쓰나미'였다. 전쟁은 사람에게 비극이었지만 미생물엔 번식의 최대 호황기였다. 미 군의관은 "한국은 책에서만 본 질병의 왕국"이라고 읊조렸다. 의사도, 약도, 기구도 부족했다. "심장에 물이 차 숨을 쉬지 못하는 환자가 들어왔다. 일단 수술대 위에 눕혔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책을 펴놓고 읽어가면서 수술했다." 당시 서울대 의대 졸업 직후 10군단 민사처 병원에 배치됐던 의사의 회고다.

    미군은 무엇보다 부실한 위생이 전력 약화로 이어질까 봐 신경을 곤두세웠다. 미군에 납품하는 채소 생산지와 가축 도축장은 물론 통조림 공장에까지 검역부대를 보내 샅샅이 살폈다. '부적격 음식물'은 시장에 나와 음식으로 변신했다. '부대찌개'의 효시다.

    6·25 당시 예방주사를 맞는 아이들(왼쪽)과 전쟁 중 네이팜탄으로 화상을 입은 여인들. /이순 제공
    한국인의 약품 남용 습관도 이때 군에서부터 퍼졌다. 완벽한 치료보다 빠른 대응이 중요했던 군에서는 항생제 사용이 잦았다. 한번 효력을 맛본 환자들은 두고두고 '애용'했다. 소염제 해열제 진통제 소화제 등 온갖 약을 약장수를 통해 받아 썼다. 미제 약은 '신물(神物)'이었다. 그때부터 미제 물건에는 후광이 따라다녔다.

    이 혼돈 속에서 한국의 근대 의료가 골간을 잡아간 것은 아이러니였다. 의료 현대화가 시작된 곳도 사실상 군 병원이었다. 의료진은 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임상과 의료 골격을 갖추어 나갔다.

    식민지와 전쟁의 위태로운 벼랑 끝에서 사람들은 '진정한 국민'이라는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갖게 됐다. 집단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최종적인 의지처는 국가였다. '의료'가 국가시스템의 한 부분이며, 건강은 개인의 '관리' 대상이라는 근대적 의식이 비로소 탄생했다.

    "전쟁은 한국민 모두에게 국민이 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 누구나 국가와 군의 명령을 즉각적·자발적으로 수용하는 데 익숙해져야 했다. 국가는 건강한 국민을 만들기 위해 의학의 시선으로 국민을 살폈고 국가의 관점을 내면화한 국민들 역시 의학의 시선으로 자기 몸을 살피는 방법을 배웠다."

    ◆읽어보니


    폭과 깊이를 더해가는 우리 근현대사 연구의 흐름에서 또 하나의 지류를 텄다. 질병과 전쟁, 국가를 연결시킨 대목은 미 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선구적인 저서 '총, 균, 쇠'(2005)를 연상시킨다. 저자 스스로 '거친 스케치'라고 했지만 겹치는 대목을 좀 더 압축했다면 책의 완성도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저자 전우용


    49세.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땄다.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를 지냈으며 의료사·생활사 등을 연구하며 '서울은 깊다' '동아시아 서양의학을 만나다'(공저)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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