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가 그린 담배 피우는 李箱·서양인 눈에 비친 조선… 그림, 근대를 말하다

    입력 : 2011.06.04 03:01

    1898~1958년까지 86개 작품에 담긴 사건·인물 재조명

    구본웅 作‘친구의 초상’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이충렬 지음|김영사|296쪽|1만6000원

    서양화가 구본웅(1906~1953)과 소설가 이상(1910~1937)은 어릴 때부터 경복궁 서쪽 동네에 이웃해 살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친구의 초상'(1935)을 작업할 때 구본웅은 이미 결핵 3기에 각혈이 심했는데도 모델이었던 이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담배를 피웠다. 키가 큰 이상과 작은 구본웅이 함께 걸어가면 사람들은 "곡마단패가 들어왔나 보네" 하고 수군거렸다.

    구본웅은 산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친모 대신 계모 변동숙의 손에 자랐다. 변동숙의 아버지가 훗날 새장가를 들어 낳은, 26세 차이 나는 이복 여동생이 변동림. 변동림은 연상의 조카 구본웅의 친구 이상과 문학을 논하다가 사랑에 빠져 폐병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상과 결혼한다. 신혼 1년도 못 채운 이상의 마지막 말은 "멜론이 먹고 싶소"였다.

    엘리자베스 키스 作‘원산서당의 훈장과 학생들’ /김영사 제공
    이 책은 1898년부터 1958년 사이에 그려진 외국 화가와 우리 화가들의 작품 86점을 통해 각 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저자는 재미 작가 출신이다. 우리 서양화의 역사는 1915년 춘곡 고희동(1886~1965)이 일본의 도쿄 미술학교에 유학하면서 시작되었지만, 그를 비롯해 그 뒤를 이은 김관호(1890~1959) 등 최초의 서양화가들은 유학에서 돌아온 후 사회의 서양화 경시 풍조에 좌절하면서 붓을 꺾었다. 국내에서 서양화는 1920년대 후반에 가서야 풍경화다운 풍경화가 나올 정도로 늦게 시작됐다.

    반면, 1919년 3·1만세운동 직후 우리나라를 방문한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다양하고 풍성한 작품들로 양적·질적으로 단연 압도적인 작품을 남겼다. 무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부터 나막신을 만드는 장인, 조선의 마지막 황후와 방탕에 빠진 귀족들, 크리스마스 실(seal) 도안까지 우리 근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또 1920년 일본서 태어난 미국 화가 릴리언 밀러가 그린 한강·대동강의 황포돛배와 내금강의 절경은 이제는 사라져 다시 볼 수 없는 근대의 귀한 풍경이다.

    그림의 수준에 편차가 커 아쉽지만, 이당 김은호(1892~1979)가 그린 순종·윤택영·윤덕영의 초상화는 마치 정교한 흑백사진처럼 지금 기준에도 경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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