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겠다는 환자 살려낸 의사… 잔혹한가 자비로운가?

    입력 : 2011.06.04 03:02

    '법정에 선 과학' 쓴 쉴라 재서노프 인터뷰
    "법과 과학의 충돌 갈수록 심해질 것"… 기후변화에 대한 많은 예측 있어도 뭐가 맞는지 몰라

    쉴라 제서노프 제공
    #1. "A양과 B군의 수정란으로 C양이 임신해 D군을 낳았다. D군의 엄마는 A양인가, C양인가?"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A양이 엄마"라고 판결했다. 한국도 여태 소송이 안 붙었달 뿐 의학 사례는 여럿 있었다.

    #2. 새신랑이 암으로 죽은 뒤 부인이 미리 냉동해둔 남편의 정액으로 딸을 낳은 사례도 있다. 이 아이가 유족연금을 탈 수 있을까? 루이지애나주 법원은 "법적으론 사생아라 못 주겠다"고 했다.

    #3. 1983년 26세의 여성 보비아는 공립병원에 실려 갔다. 중증 뇌성마비로 전신이 마비된 데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통증이 극심했다. 보비아는 "편히 죽게 도와달라"고 했다. 병원은 "어떻게든 살려놓겠다"고 했다. 법원은 병원 손을 들어줬다. 의료진이 보비아를 꽉 붙들고 튜브 끝을 씹으며 저항하는 그녀의 입에 튜브를 밀어넣었다. '가혹행위' 논란이 일자 법원은 병원에 "강제 영양공급을 계속하되 진통제도 같이 주라"고 했다. 보비아는 항소심에서 이겨 1987년 튜브를 뗐다. 아사(餓死)를 시도했지만 숨이 끊어질 때까지 몇 주일이 걸릴지 몰랐다. 보비아는 포기했고 지금도 살아 있다. 그녀에게 독극물을 주지 않는 우리는 잔혹한가, 자비로운가?

    '법정에 선 과학'(동아시아출판사)은 법과 과학이 얼마나 복잡하고 격렬하게 충돌하는지 조목조목 보여준다. 국내엔 처음 번역됐지만 해외에선 이미 고전이다. 저자 쉴라 재서노프(Jasanoff·사진) 하버드대 교수는 보스턴 자택에서 전화를 받고 "이런 충돌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왜 그럴까?

    법과 과학은 출발부터 다르다. 법은 정의를, 과학은 진리를 추구한다. 정의와 진리는 많은 경우 서로 다툰다. 간명한 사례가 1993년 고압선 근처 주민들이 뉴욕주 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소송이다.

    주민들은 "전자파 때문에 집값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전자파가 정말 해로운가, 아닌가'가 핵심이다. 반면 법원이 보기에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유해 여부를 떠나, 전자파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다면 그 자체가 현실이니까 전력공사는 주민들에게 돈 물어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재서노프는 "신기술이 나오면 인간은 과거에 못하던 일을 과학의 힘으로 이루려 든다"고 했다. 그 결과 새로운 과학과 오래된 법이 격돌한다. 죽은 사람의 냉동 정자로 태어난 아기는 적자냐, 서자냐 따지기에 앞서 한 세대 전만 해도 SF 소설이었다.

    우리는 으레 '과학은 정답과 오답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주장과 논거를 대며 갑론을박 오답을 발라내고 정답에 수렴해간다. 하지만 현실에선 마냥 기다릴 수가 없다.

    재서노프는 초판을 낸 뒤 새롭게 부각된 이슈로 '기후변화'를 맨 먼저 꼽았다. 기후변화야말로 과학의 불확실성이 기존 체제에 얼마나 부담을 주는지 잘 보여준다. 수많은 예측 가운데 어느 것이 맞을지 지금으로선 누구도 말할 수 없고, 그 때문에 기후변화 논의 전체가 갈수록 정치화되기 때문이다.

    세상과 사람 관계가 놀랍도록 복잡해졌는데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재서노프는 "정말 알아야 할 때가 오면 대중은 놀랍도록 빨리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했다. 대중이 해괴한 선동에 넘어가는 건 그럴 만한 심리적인 이유가 있어서다. 가령 동네에서 원전사고가 났는데 정부가 계속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재서노프는 "어떤 사안이건 다양한 전문가들이 공개토론을 벌이고, 대중이 질문할 수 있는 루트를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재서노프는 인도에서 태어나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환경 전문 변호사를 거쳐 학자가 됐다. 오빠는 코넬대 교수(수학), 남편과 딸은 하버드 교수(언어학·역사학), 아들과 바깥사돈은 MIT 교수(신경과학·수학)다. 직계가족 중 교수도 박사도 아닌 사람은 여섯 살짜리 손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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