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에 빠진 일본, 가난에 목 졸린 일본

    입력 : 2011.06.18 03:10

    은퇴 대국의 빈곤 보고서
    전영수 지음 | 맛있는책 | 400쪽 | 1만6000원

    일본 대형 철강회사의 자회사에서 차량운전을 했던 57세 야마우치 신이치. 가슴 통증에 병원을 찾았더니 심근경색 진단이 나왔다. 혼자 살며 건강관리를 못한 탓이다. 2년간 상병(傷病) 수당을 받으며 휴직했지만, 기간 만료 1개월 전 해고통지를 받았다. 사택에서도 쫓겨나 차에서 지냈다. 생활보호대상자인 어머니는 먼 곳에 살고, 형제와도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취업소개소에 갔지만 나이 때문에 할 일이 없었다. 퇴직금이 바닥나고 스스로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 나고야로 가 로프를 사서 한겨울에 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로프가 가지에 걸리지 않아 실패. 손목을 그었지만 곧 피가 멈췄다. 죽지 않은 채 밤이 왔고, 짐승 소리는 무서웠다. 다음 날 아침부터 1주일을 굶었으나 그래도 죽지 않았다. 이번에 물을 산 뒤 속옷만 입은 채 물을 부었다. 얼어 죽기 위해서였다. 동상으로 발이 부어 땅에 구를 만큼 아팠지만 의식은 멀쩡했다. 산속에 들어온 지 2주째 되던 날 동네 주민에게 발견돼 경찰에 인계됐다. 일본 주간지 '다이아몬드' 2010년 4월 3일자에 실린 기사다. 이른바 '무연(無緣) 사회' 특집호였다.

    경제지 기자 출신으로 현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일본학과) 겸임교수인 저자는 신간 '은퇴 대국의 빈곤 보고서'를 통해 한마디로 "일본 사회가 고독에 빠져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가장 큰 원인은 '가난'이다. 돈이 없으니 인간관계마저 끊어진다. '독신=가난'이라는 항등식. 게다가 한국·중국과 달리 일본에는 명절 때 고향·부모를 찾는 문화가 없다. 여기에서 생계형 범죄부터 아사(餓死), 자살 사건이 줄줄이 파생한다. 공통점은 '외로운 죽음', 즉 고독사(孤獨死)다. 일본에선 연간 3만2000여명의 고독사가 보고된다.

    /뉴시스
    현지 언론은 이를 무연 사회의 확대로 해석한다. 고독사가 부각된 2010년을 계기로 무연 사회 후폭풍이 일본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작 문제는 시스템과 인식의 변화가 없는 한 마땅한 대안·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연 사회의 '배경'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일본의 대외 채권 규모는 610조엔(2009년). 잠시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지만, 금방 탈환했다. 여기에 국부(國富)의 상징적 지표인 개인 금융자산이 1500조엔. 곳간은 넘쳐난다. 그러나 가난한 국민이 급격히 늘고 있다. 2006년 일본 언론은 '격차(隔差) 사회'라는 단어를 대대적으로 유통시켰고, 시민 사회는 승자·패자의 자본주의 양분(兩分) 논쟁으로 들끓었다.

    과거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은 흔히 개발주의 복지모델로 불린다. 요점은 "정부가 할 일을 기업이 맡는다"이다. 기업이 고도 성장기 종신고용·연공서열을 통해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품으면서 생활 보장에 앞장섰다. 대졸 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평생에 걸쳐 결혼·육아 등의 복지 수요가 기업 내부에서 해결됐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지방 경제 종사자의 경우 중앙 정부의 공공투자 수요로 일자리를 보장했다. 정부의 복지 시스템은 여성·고령 근로자 등 기업이 커버하지 못하는 일부 계층에 한정해 가동됐다. 그러나 1990년 이후 복지 축소·규제 완화·시장 개방 등의 신자유주의 운영 논리가 이식되면서 기업의 복지 안전망이 붕괴되고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중산층 이하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책은 일본의 무연(無緣)·만혼(晩婚)·폐색화(閉塞化)를 조목조목 짚는다. 가장 상징적인 구호(?)는 '내 묘(墓)는 내 스스로'. 생전의 장의(葬儀) 준비를 뜻하는 것으로, 수도권 장의 비용이 평균 500만엔(약 6750만여원)을 넘어가면서 나온 얘기다. 상세한 일본의 상황 묘사에 대해 저자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자는 취지"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NI)이 3만5000달러인 나라와 이제 갓 2만달러를 넘고 있는 우리의 사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경제 규모, 연금 제도 운용, 기업 문화 등의 '격차'를 고려하면 역시 '일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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