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C 중 B코스 선택한 나는… 낚였다!

    입력 : 2011.09.17 03:05

    가격은 없다

    윌리엄 파운드 스톤 지음|최정규·하승아 옮김|동녘사이언스|452쪽|1만8000원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매가격의 30~65%는 끝자리가 9로 끝난다고 한다. 9라는 숫자는 1000달러대에서도 나타나고, 때로는 1센트 자리에 붙기도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기지를 발휘해 첫 번째 아이팟의 다운로드에 대해 곡당 가격을 99센트로 정했다. 2009년 애플은 음악 한 곡을 다운받는 가격을 0.69달러로 더 낮췄다. 이런 가격 책정의 목표는 명백하다. 쇼핑객들은 숫자의 끝자리를 대충 잘라내고, 어떤 가격이든 가격의 첫 자리 숫자만 선명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신간 '가격은 없다'는 다양한 가격 정책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거기에 얽힌 심리학적 분석들을 보여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격은 위험한 조작 장치"라는 주장을 편다. 저자는 MIT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논픽션 작가이다.

    가격 설정이 중요한 것은, 팔리지 않는 상품이 팔리는 상품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고급 주방용품 회사 윌리엄스 소노마(Williams Sonoma)는 멋진 제빵기를 279달러에 내놓은 적이 있다. 이후 조금 더 큰 모델을 429달러에 내놨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429달러 모델은 시장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반대로 279달러짜리의 매출은 두 배로 증가했다. 소비자들은 소노마 제빵기의 품질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구매를 망설인다면 그 이유는 오직 가격 때문이다. 제빵기의 가격이 279달러라면 그 자체로 비싼 편이다. 그러나 429달러 모델이 나오자 279달러라는 가격은 더 이상 비싼 가격이 아닌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제 279달러 모델은 429달러 모델과 거의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도 가격은 훨씬 싼 바람직한 상품으로 합리화되었다.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건축 의뢰를 받을 때, 나는 언제나 가격에 5000만달러 혹은 6000만달러 정도를 더 붙인다. 고객이 7500만달러 정도의 비용이면 될 것 같다고 말한다면, 나는 1억2500만달러 정도 들 것이라고 하고는 사실은 1억달러에 짓는다. 치사한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두 가지 숫자 사이의 '대비'에서 오는 '오도(誤導) 효과'의 사례이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앵커링(anchoring·닻 내리기 효과)과 조정(調整)'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사람들이 알려지지 않은, 또는 불확실한 양(量)을 추정할 때 초기 값(앵커)이 심리적 지표 또는 출발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경구피임약 복용으로 난소암이 발생한 여성들이 미국보건기구(HM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가상의 사건에 대한 모의 실험(1996년)을 들 수 있다. 80명의 대학생을 4그룹으로 나눠, 각각의 그룹에 원고 측 요구 금액을 100달러, 2만달러, 500만달러, 10억달러라고 서로 다르게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모의 배심원이 된 이들 학생에게 피해 배상액을 결정하도록 하자 각각 990달러, 3만6000달러, 44만달러, 49만달러의 판결 금액이 나왔다. 원고 측 요구 금액을 100달러에서 2만달러로 200배 증가시키자 판결 금액도 36배 증가해 3만6000달러가 된 것이다.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의 행동을 조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원칙 중에는 '극단 기피'라는 것이 있다. 카메라·전자레인지·타이어·컴퓨터 등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소비자들이 불확실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비싸거나 가장 싼 상품을 선택하는 것을 주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품질이 가장 높은 것과 가장 낮은 것, 크기가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소비를 꺼린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중간 수준에 있는 상품을 선호한다. 그러므로 800달러짜리 구두를 팔고 싶다면 바로 옆에 1200달러짜리 구두를 전시해 두면 되는 것이다.

    '가격'이라는 허상에 속지 말라는 충고와 사례가 백화점처럼 다양하게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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