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CEO 사임 뒤 수정 원고 보내와"

    입력 : 2011.10.25 03:03 | 수정 : 2011.10.25 09:23

    잡스 전기 번역 안진환씨… 명예훼손 등 소송 우려, 예민한 표현들 고쳐

    '스티브 잡스'(민음사 출간)를 번역하는 동안 번역자 안진환(48)씨는 20년 번역 인생에서 '난생 처음'을 경험했다. "공식 출간 전에 내용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을 한 것이 하나. 또 민음사가 자신을 선택한 뒤 그간 번역한 책 리스트를 영문으로 작성해 미국 에이전시로 보냈다. "살짝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총 41장으로 구성된 이 전기에서 안씨는 제 37장을 번역하다가 잡스의 부고를 들었다. 그는 "번역자는 전기를 번역할 때 인물에 정이 들게 된다"면서 "착잡한 심정으로 번역을 계속했다"고 했다. 지난 8월 24일 스티브 잡스가 애플 CEO를 사임한 뒤 제 36~41장의 원고가 수정되어 다시 왔다. 명예훼손 등 법적 소송을 대비한 새 원고. 가령 잡스의 고등학생 시절 동거했던 여자친구 크리스를 '피해의식'(victim mentality)이라고 표현했던 대목을 '불만'(sense of grievance)으로 바꿨고, 잡스의 병원 치료 묘사 부분에서 "기도세척을 안하겠다"는 문장 앞에 "(의사들의) 거듭된 조언에도 불구하고"(against all advise)를 집어넣었다든지 하는 내용이었다. 의사를 '멍청이'라 썼던 부분도

    안씨는 공식 출간 전에 외신을 통해 먼저 알려졌던 소식 한 가지도 바로잡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잡스에게 전화를 걸어 르윈스키 관련 사건의 조언을 부탁했다는 내용이다. 안씨는 "최소한 이 책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면서 "필자인 아이작슨이 잡스에게 듣고도 쓰지 않았거나, 아니면 잘못 알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원고 분량은 200자 원고지 총 3900장. 번역기간은 7월 하순부터 10월 초순까지 두달 반 정도였다. 이 분야 번역은 보통 한 달 1000장이면 여유, 1500장이면 '빡빡하다'고 표현하는데, "최악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빡빡한 수준이었다"고 했다.

    번역자 입장에서 가장 감명깊었던 부분은 잡스의 '완벽에 대한 집착'이었다고 했다. 안씨는 "매킨토시건 전시장 애플스토어건 5~6개월 걸려 만든 시제품도 마음에 안들면 모든 걸 뒤집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곤 했다"면서 "완벽에 대한 집착이 상상을 초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또 환각제 LSD사용에 대한 대목도 예로 들었다. 가령 60년대 히피문화에서 대마초나 LSD를 경험했던 유명인사들이 나중에 거짓말을 하거나 "그 때는 다 그랬다"는 식의 변명을 한 것과 달리, 잡스는 "내게는 의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다는 것. 그는 "잡스는 자기 자신의 감정에 아주 솔직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면서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성격이었지만, 재능이 뒷받침된 덕분에 위대한 인물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안씨는 연세대를 졸업한 경제·경영 분야 전문 번역가로 '넛지''빌게이츠@생각의 속도' '괴짜경제학' '실리콘밸리 스톨' '포지셔닝' 등을 번역했으며 번역에이전시 인트랜스와 번역아카데미 트랜스쿨의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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