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조선, 출가외인은 없고 처가살이는 있더라

    입력 : 2011.11.19 03:14

    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
    이순구 지음|너머북스|236쪽|1만5000원


    1614년 광해군 시절, 역모 사건을 수사하던 중에 남녀 한 쌍이 붙잡혀왔다. 오언관과 이여순이었다. 두 사람은 역모와는 관련 없었으나 '풍속사범'으로 몰렸다. 양반집 부녀자가 외간 남자와 산천을 유람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여순은 훗날 인조반정을 일으킨 핵심인물 이귀(李貴)의 딸이었다. 심문을 받은 이여순은 열다섯에 시집갔으나 선(禪)불교에 심취해 남편과 도를 공부했는데, 오언관은 그때 함께 공부한 친구라고 했다. 남편은 "당신 같은 처가 있고, 오언관과 같은 친구가 있으니 나의 일생의 행운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이 죽자, 이여순은 오언관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신하들은 이여순을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광해군은 간통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사면했다. 남녀 구분이 엄격했던 조선 후기에도 남편 친구와 학문적 우정을 유지한 여성이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여성사와 가족사를 전공한 이순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 쓴 이 책에는 남자와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나누며 활동하던 여성의 활기찬 모습이 가득하다. 사림의 종조(宗祖)로 꼽히는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밀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숙자는 경북 선산이 고향이지만 결혼 후 처가인 밀양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16세기까지는 결혼하면 여자는 친정에 그대로 살고, 남자가 정기적으로 자기 집과 처가를 오가든지 아니면 아예 처가에서 눌러 사는 경우가 많았다. '장가(丈家)간다'는 말은 본래 '장인 집에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20세기 초까지도 시골에선 신부가 1~2년씩 친정에 머물렀다.

    제사도 아들, 딸이 돌아가며 모시는 경우도 흔했다. 17세기 남평 조씨 부인이 남긴 일기엔 친정어머니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 나온다. 조씨 부인 남편은 한성판윤까지 지낸 지체 높은 신분이었다. 친정아버지 제사는 조씨 부인의 오빠네에서 맡았다. 그러나 성리학이 지배적인 조선 후기가 되면서 아들이 제사를 도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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