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픔은 쾌락이고 어떤 고통은 통증인가

    입력 : 2011.11.19 03:14 | 수정 : 2011.11.19 05:19

    통증의 역사 집대성에 10년 만성통증 앓아온 저자의 통증경험도 담아
    은유적, 생물학, 뇌작용 3가지 관점으로 바라봐 "통증은 늘 내겐 새롭지만 남에겐 금세 뻔한 일이…" ―소설가 알퐁스 도데

    통증연대기
    멜러니 선스트럼 지음|노승영 옮김|에이도스|444쪽|2만원

    독일의 서정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가 털어놨다. "정신적 고통은 육체적 통증보다 견디기 쉽다. 악한 양심과 치통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전자를 택하겠다." 그리고는 한마디 더 중얼거렸다. "세상에 치통보다 더 끔찍한 것이 어디 있으랴!"

    러시아 출신의 미국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는 아예 "인류의 역사는 통증의 역사"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누구나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질병'과 달리, '통증'은 지극히 사적 체험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통증의 한 가지 저주는 통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거짓말처럼 들린다"는 차가운 진술이 그 한 예다. 과학저술가이자 소설가인 멜러니 선스트럼(Thernstrom·47)의 2010년 작품 '통증 연대기'(The Pain Chronicles)는 통증 비경험자·무경험자들까지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꼼꼼하고 유혹적인 글쓰기다. 과학·역사·의학·종교의 최신 성과를 바탕으로 통증의 역사를 집대성했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필자 자신이 퇴행성 골관절염을 앓고 있는 만성통증 환자로서, 신앙고백과 같은 간절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통증에 대처하는 세 가지 자세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시간순으로 적은 기록을 '연대기'라 할 때, 통증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이 존재했다고 선스트럼은 소개한다. 우선 근대 이전에 지배적이었던 은유로서의 통증관. 가령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로 통증이 시작됐다는 식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날개를 활짝 펼친 마신(魔神)이 통증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저잣거리 백성들뿐만이 아니다. 19세기 중엽 마취약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국 치과의사협회장은 이렇게 선포했다. "통증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사탄의 활동이므로 반대한다!"

    두 번째 관점은 생물학적 통증관. 이에 따르면 통증은 조직 손상을 경고하는 신체 보호 활동이다. 질병이나 부상의 신호로서, 시급히 휴식을 취하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점은 곧 예외와 저항에 부딪혔다. 조금 선정적인 예외에는 이런 게 있다. 왜 순결을 잃을 때의 통증과 강간당할 때의 통증은 근본적으로 다르게 느껴지는가. 힌두교 축제에 참가한 순례자들이 꼬챙이를 입술에 꿰고서도 '환희'를 느낀다고 말하는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이런 까닭으로 세 번째 관점이 등장한다. 앞선 두 가지 관점의 혼용으로, 뇌의 여러 부분이 상호작용하여 생기는 게 통증이라는 것. 즉 단순한 신경작용이 아니라, 과학과 정신(뇌)의 복합적 산물이라는 설명이다. 어느 때는 쾌락이고, 어느 때는 통증인가. 그렇다면 명상이나 수련으로 통증을 극복할 수 있다는 종교의 주장도 다시 일리가 있지 않은가. 옛 스님들이 30년씩 걸렸던 수련시간을 최근의 뇌과학 연구자들은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는 게 선스트럼의 취재결과다.

    /corbis 토픽이미지
    쾌락을 탐했더니 통증이 왔다?

    앞서 말했듯 선스트럼은 스스로가 만성통증 환자다. 그는 통증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과 통증 치료의 역사를 연대기 순으로 서술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통증 일기 10년'을 중간 중간 교차 편집 형식으로 끼워넣었다. 가령 죄의식의 발현으로 통증을 바라보는 근대 이전 통증사를 서술하면서, '나의 비밀'이란 소제목으로 자신의 사례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 비밀을 요약하면 이렇다. 스물아홉 선스트럼은 친구의 연인에게 연정을 품었다. 풍광 좋은 연못으로 셋이 소풍을 간 뒤 도발적이고 충동적으로 그 사내에게 둘이 헤엄치자고 제안했다는 것. 그런데 사고가 발생했다. 연못을 가로질러가던 도중 선스트럼의 수영복 끈이 엉키더니 상의가 흘러내린 것. 드러난 가슴, 친구에게 느낀 죄의식… 선스트럼을 평생 괴롭힌 골관절염의 통증은 하필 그날 밤 처음으로 찾아왔다. 당연히 그녀는 은유로서 이 통증을 받아들일 수밖에. 이성(理性)은 신체의 특정 부위가 고장 났다고 판단했지만, 친구의 남자를 탐한 대가라는 죄의식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후 10년 동안 그녀의 사고와 치료 경험은 은유로서의 통증관에서 생물학적 통증관, 뇌의 작용으로서의 통증관으로 확장됐다. 죄의식에 기반한 통증, MRI 검사를 통해 퇴행성 골관절염인 경추증 진단을 받았을 때, 어떤 플라시보 요법도 효과가 없다가 최신 뇌영상 디스플레이 장치로 자신의 뇌를 들여다보면서 통증치료에 효과를 보게 되는 최근까지의 10년 여정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통증의 저주와 극복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1840 ~1897)는 이렇게 말했다. "통증은 언제나 내게 새롭지만, 지인들에게는 금세 지겹고 뻔한 일이 된다." 만성 통증환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다.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타인에게 전달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개인적 경험. '통증연대기'가 지니는 미덕은 바로 이 대목이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몇 임상사례와 최신 뇌과학의 연구성과는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극히 전문적이다. 하지만 고대의 치유법, 환각과 마취법, 에테르 기체의 발명, 아스피린, 플라시보 효과, 마약성 진통제, 최첨단 뇌영상 기법 등 최신 임상사례를 생생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선스트럼의 언어는 이 '통증의 저주'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된다.

    하버드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녀가 마침 문예창작학과를 한 번 더 다닌 것이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큰 다행이다. 의학사의 연대기와 자전적 연대기가 유려하고 진솔한 글쓰기로 만난 예외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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