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 기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안 되려면…

    입력 : 2011.11.19 03:14

    빈곤국에 투자하는데 세상은 변한 게 없다? 문제는 모인 성금이 어떻게 쓰였냐는 것
    효과적 프로그램으로 구체적인 현실 개선과 연결시키는 것 중요

    빈곤의 덫 걷어차기

    딘 칼런·제이콥 지음|신현규 옮김|청림출판|399쪽 | 1만7000원

    가난은 개인이나 국가나 오랜 숙제다. 세계 빈곤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지금도 전 세계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약 30억명이 매일 2.5달러 정도로 생활한다. 이들을 어떻게 하나. 크게 두 가지 해법이 맞선다. 우선 부자 나라들이 돈을 더 내놔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대표 논객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난 50년간 선진국이 빈곤국에 투자한 돈이 2조3000억달러에 이르는데도 세상은 별 변화가 없었다"고 말한다. 세계은행 최고 임원을 지낸 윌리엄 이스털리 뉴욕대 교수의 목소리다.

    저자는 양측을 중재하면서 아우른다. 중요한 것은 모인 돈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법이다. 흔히 "물고기 한 마리를 주면 하루를 살지만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을 살 수 있다"는 비유를 든다. 하지만 저자는 "어떤 이는 낚시조차 꺼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빈곤 퇴치는 하나의 일반 공식이 아닌, 구체적인 현실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빈곤의 덫 걷어차기’는 효과적인 세계 빈곤 퇴치를 위해서는 현실 속 인간의 성향과 행동 습관을 감안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가수 이효리가 월드비전과 함께 인도 뭄바이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는 모습.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가령 최근까지 각광받아온 소액 신용대출 프로그램도 빈곤에 대한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후한 대출도 기업가 정신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창업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기껏 빌린 돈을 더 많은 소비에 탕진하기 일쑤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가려서 적용해야 한다.

    저자는 현실에서 검증받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사례로 든다. 케냐 부시아 지역에서는 비료 선구매 쿠폰 제도가 마을의 수확량을 늘렸다. 그전까지 주민들은 비료 사용을 꺼렸다. 매번 다음해로 미루기만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관성 탓이었다. 국제비영리기구인 ICS 아프리카가 꾀를 냈다. 추수가 끝나는 시즌이면 농부들 집에 찾아가 비료 쿠폰을 팔았다. 다음 농사 시작 때 비료를 무료 배달해 주겠다는 조건. 추수철이라 주머니 사정이 좋은 주민들은 흔쾌히 응했다. 쿠폰 구매로 비료 사용량은 1.5배 늘었고 수확량도 그만큼 올랐다.

    빈곤 퇴치의 주요 지렛대인 교육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케냐에서는 교복을 무료로 나눠주니 학생들 출석률이 높아졌다. 멕시코에서는 빈곤층 학부모들이 자녀 출석일을 일정 수준 지키면 현금을 주는 프로그레사 프로그램을 시행해서 효과를 봤다. 최근에는 '구충제 기법'이 각광받고 있다. 1998년 케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구충제를 무료 배포했더니 결석률이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프로그레사 프로그램의 경우 학생이 학교를 1년간 더 다닐 경우 약 1000달러 보조금을 지원해야 하고, 교복을 무료로 나눠주는 데는 1인당 연간 약 100달러가 드는 데 반해 구충제 프로그램 비용은 1인당 3.5달러에 불과했다.

    기부를 이끌어낼 때에도 그저 도덕적 의무감에만 호소해서는 안 된다. 감동이 필요하다. 국제 구호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월 30달러가량 기부자에게 정기적으로 후원아의 사진과 편지를 받아보게 하는 것이 그 예다. 2010년 1월 '아이티로 문자 메시지 보내기' 캠페인이 성공한 것도 같은 원리였다. 손안의 휴대전화로 아이티라는 문자만 날리면 '당신은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칭찬과 감사의 답장이 바로 날아들게 했다. 10달러 미만 소액기부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참사 첫 3일간 약 1000만달러(약 120억원)가 모였다. 오늘날 미국 개인 기부자의 기부금 합계(연 2000억달러)는 기업, 재단, 상속 등을 통한 기부금 합한 액수의 세 배가 넘는다.

    저자는 2002년부터 직접 빈곤퇴치혁신기구(IPA)를 공동 설립해 운영해왔다. 시작 때만 해도 매출액은 150달러였지만 매년 두 배씩 커지면서 2009년 현재 1800만달러의 기부금 및 각종 계약에 따른 매출을 기록 중이다. 250명의 상근 직원이 32개국에서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에 해당한다. 뉴욕타임스는 2007년 저자 딘 칼런을 '경제학의 미래를 책임질 소장 경제학자 20인'에 포함시켰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국내 빈곤 퇴치 문제에 생각이 이르게 된다. 저자의 대답은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기부나 모금이 다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모인 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해 현실을 개선해 나가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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