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예술의 운명에 대한 이문열의 悲感어린 성찰

    입력 : 2011.11.19 03:21 | 수정 : 2011.11.19 03:25

    리투아니아 여인
    이문열 장편|민음사|275쪽|1만1500원

    작가 이문열(63)이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가 자신의 소설이 시대와 사건에 편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후끈 달아올랐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우리 인터넷문화의 폐해를 누구보다 격렬히 경험했던 그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이번 작품의 모델은 어머니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인 유명 뮤지컬 음악감독. 뮤지컬 '명성황후'를 같이한 인연 등으로 이미 18년 전 이번 이야기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한 일간지에 이 소설을 연재하는 도중 그녀가 갑자기 대중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작가는 "내 글쓰기가 마치 냄비처럼 달아오르는 우리 시대의 호오감정에 편승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주 싫었다"고 했고, 연재를 마친 뒤 한동안 책으로 묶어내는 일도 주저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리투아니아 여인'은 1980~90년대의 이문열을 사랑했던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한 실제 인물의 반생(半生)을 중심으로 한 소품(小品)이지만, 그 안에는 사랑과 예술의 운명에 대한 작가 특유의 인문학적 성찰이 고비마다 빛을 낸다. 지난 10년 동안 '어두운 열정'에 빠져들어 세상과 시비를 시작했고, 문학적 감수성과 언어 감각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어쩌면 '추방당한 예술가'에서 '유목민적 예술가'로 거듭나는 작품 속 혜련에게서 이 상처입은 작가의 지향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압축하면 혜련 혹은 헬렌이라는 두 이름을 가진 음악감독의 사랑과 예술 이야기. 갈색 눈에 금발머리 외모를 지녔으나 누구보다 걸쭉하게 부산사투리를 구사하는 이 코스모폴리탄의 다국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리투아니아의 몰락한 봉건 영주가 외할아버지였던 혜련이 어떤 사연을 거쳐 미국과 한국을 맥락 없이 왕복하는 디아스포라(유민·流民)가 되었는지도 흥미롭지만, 역시 이 장편소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정체성의 불협화음'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성찰의 대목들이다.

    성안 영주의 미망인과 하룻밤을 자고 난 나무꾼 총각처럼 코카서스 여성과 인연을 맺은 몽골리안 남성이 결혼한 뒤에도 이질감과 경원을 느끼는 대목이라든지,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성취를 '튀기의 곁눈질'로 폄하한 민족주의적 편협함에 맞서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음악적 소비자를 찾아 떠나는 대목은 '리투아니아 여인'을 읽어야 할 작지 않은 이유를 제시한다.

    처형된 아버지 임화와 미쳐서 막내딸을 업고 평양거리를 헤매는 계모 지하련, 그리고 북한 방문에서 그 소식을 듣고 실어증에 걸린 임화의 딸 혜란. 이들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속 뮤지컬은 기대하지 않았던 또 한 편의 매력적 선물이기도 하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