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북위 10도' 사이에서 종교가 한 일은…

    입력 : 2011.11.19 03:21 | 수정 : 2011.11.19 03:25

    석유·식수 자원 주도권 싸움… 인구증가·경제난, 미숙한 민주주의도 종교 갈등 부추겨 끝없는 보복…
    피비린내 진동하는 북위 10˚분쟁지역

    위도 10˚
    엘리자 그리즈월드 지음|유지훈 옮김|시공사|352쪽|1만6000원

    책에선 피비린내와 불타는 매캐한 연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적도에서 북위 10도에 이르는 공간. '종교가 전쟁이 되는 곳'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약탈과 방화, 폭력, 전쟁이 난무하는 분쟁지역들이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나이지리아, 수단, 소말리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위도 북위 10도에 포함되는 나라들의 분쟁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우리나라의 분쟁지역 전문가인 김영미 PD조차도 "놀랍다"고 할 만큼 위험천만한 곳들이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온갖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 성공회 사제의 딸인 그리즈월드는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그들의 육성으로 싸움의 현장과 원인을 들려준다.

    종교와 전쟁

    "다시 와서 수단 전역에 복음을 전하고 싶소."(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 "내가 종교의 자유를 원하는 까닭은 당신의 종교를 바꾸고 싶어서요. 우리는 당신을 무슬림으로 만들겠소."(알바시르 수단 대통령)

    2003년 12월 수단의 수도 하르툼의 대통령궁에서 만난 알바시르 대통령과 그레이엄 목사는 이렇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세계적 부흥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이자 미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목사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를 수단으로 부른 것은 알바시르 측이었다. 알카에다와 연계됐다는 이유로 미국이 가하는 경제 제재를 면해보려고 9·11 이후 "이슬람교는 사악하고 흉악하다"고 거침없이 주장한 그레이엄 목사를 상징적으로 초청한 것. 지도자급의 입씨름은 차라리 애교다. 현실은 참혹하다.

    나이지리아에는 '미들 벨트(Middle Belt)'라는 지역이 있다. 아프리카 대륙을 동서로 가르는 폭 312㎞에 이르는 비옥한 초원인 이 미들 벨트를 경계로 북부 사막엔 무슬림, 남부 늪지대엔 기독교도가 산다. 이곳에선 종교에 따른 공격과 보복이 상시 벌어진다.

    시공사 제공
    2004년엔 무슬림이 교회를 습격해 불을 지르고 예배 보던 교인들을 학살했으며 목사를 흉기로 찔렀다. 그러자 기독교도가 반격했고, 무슬림 마을에선 다시 학살이 벌어졌다. 폭도들은 임신한 여성을 납치해 술과 돼지고기, 개고기를 강제로 먹여 이슬람 신앙을 우롱했고, 나흘 동안 강간하고 풀어줬다(67~72쪽). 예와라는 이 도시는 그리즈월드가 방문한 2006년까지도 폐허 상태였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민감하다'는 이유로 인구 조사 설문 항목에서 종교를 제외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즈월드가 가는 곳은 대부분이 이렇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도 기독교인들의 도시 부근에서 무슬림 학생 20여명이 학살당한 시신으로 발굴되고, 소말리아에서는 취재를 마치고 떠난 지 10여분 만에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수시로 취재 차량으로 총알이 날아든다. 그리즈월드 스스로 "죽고 죽이는 이야기만 지겹도록 들었다"(216쪽)고 할 정도다.

    분쟁의 밑바닥

    이 지역의 분쟁이 '종교'의 간판을 걸고 있지만 그리즈월드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그곳에는 자원을 둘러싼 패권과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주와 인구 증가, 외세의 개입 등 수많은 원인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이지리아의 한 가톨릭 사제는 "국가를 믿을 수 없다면 신 외에는 기댈 데가 없다. 미래가 불투명한 탓에 삶을 친히 다스려 주십사고 하느님께 간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종교 간 갈등 못지않게 종교 내부 갈등도 심각하다. 이런 문제들이 기름처럼 흥건히 고여 있는 상태에서 종교는 불꽃을 당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설프고 막연한 낙관 없이 비참한 현실을 생생하게 전하는 책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없지는 않다. 나이지리아의 위도 10도선에 있는 카두나 출신의 우예 사제와 아샤파 이맘이 그 예이다. 인구 150만명 중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절반씩 사는 이곳에서 20년에 걸친 분쟁 끝에 우예 사제는 아샤파 이맘 추종자에게 한 팔을 잃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전 세계를 함께 다니면서 평화와 공존을 설득하고 있다. 반복되는 보복으로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예 사제는 "두 뺨을 다 돌려 댔으니 더는 댈 뺨이 없다"며 이젠 평화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두 성직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마음이 향하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공존의 여지는 남겨야 하니까요." 한편으론 대표적으로 평화로운 다종교사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현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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