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에 있던 구름다리를 아시나요?

    입력 : 2012.01.07 03:25 | 수정 : 2012.01.07 05:23

    근대사 상징 정동에 서구 열강 공사관이 자리잡아가는 과정과 서울 뒷이야기 담아

    정동과 각국 공사관

    이순우 지음 | 하늘재 | 312쪽 | 1만5000원

    서울 정동(貞洞)이라고 하면 '덕수궁 돌담길'의 낭만부터 떠올리지만, 100년 전 각국 외교관들의 치열한 정보전이 벌어진 전쟁터였다. 1896년 고종이 일제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의 무대였고, 1905년 일제가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한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근대 개화기 이후엔 각국 공사관이 밀집한 '외교특구'이자 '서양인들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 소장이 최근 출간한 '정동과 각국 공사관'은 정동 일대에 자리 잡은 서구 열강 각국 공사관의 내력과 정동의 변천 과정을 풀어내면서 정동을 굴곡진 근대사의 상징 공간으로 재조명한다.

    1905년 독일영사관(지금의 서울시립미술관)이 자리한 언덕에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과 정동 일대를 바라본 전경. 사진 왼쪽에는 중화전 구역 앞쪽으로 궁역 확장을 위해 돌담장을 새로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인 것이 보인다. /하늘재 제공

    1883년 5월 개설된 미국공사관은 서울로 본격 진입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정착과 더불어 정동이 하나의 거대한 서양인촌으로 변모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곧이어 영국공사관(1884년), 러시아공사관(1885년)이 들어섰고, 다른 나라들도 외교공관을 정동 안쪽이나 정동 근처에 개설하면서 정동 일대는 '공사관 거리'라는 표현처럼 그야말로 각국 외교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정동 일대가 각국 공사관 자리로 인기를 끈 것은 무엇보다 지리적 이점이 컸다. 서울 도성의 서쪽에 위치해 인천으로 이어지는 마포, 양화진 가도로 쉽게 진입할 수 있고, 뒤편에는 서울 성벽이 둘러쳐 있는 데다 남대문, 서대문, 서소문과 가까워 비상 시 방어와 퇴각에 유리했다.

    빛바랜 사진들과 함께 펼쳐지는 100여년 전 근대 서울의 뒷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덕수궁 돌담길에 구름다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대한문 옆에서 시작되는 돌담길을 따라 정동교회 앞 분수광장 쪽으로 죽 걸어 올라가다 보면 끄트머리의 휘어진 길 언저리에서 색다른 담장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7단 높이의 석축으로만 궁장(宮墻)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데, 바로 예전 덕수궁 안쪽과 길 건너편 언덕 위를 이어주던 구름다리의 흔적이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이 서 있는 이곳은 1900년 당시 독일영사관이 있던 자리. 아관파천을 끝내고 덕수궁(당시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경운궁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독일영사관 일대를 직접 사들였고, 궁궐 내에 포함될 기존 도로도 폐쇄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서울의 외교가에 큰 파문이 일고 반대여론이 극심해 계획은 끝내 취소됐다. 대신 타협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이 구름다리. 도로는 그대로 살려두는 대신 두 지역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를 건설해 상호 간 통행에 불편함을 없애자는 취지였다.

    미국 공사관에 이면도로가 있었고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이 이면도로를 이용해 덕수궁(당시의 경운궁)을 오갔다는 내용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미국의 주간잡지 '하퍼스 위클리' 1897년 7월 24일자에 러시아 공사관 원경을 담은 사진이 실렸는데 이 사진에 미국 공사관 뒷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서 "이 길은 아관파천 시절 고종이 경운궁을 오갈 때 몸소 이용하던 통로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고 했다. 당시 미약했던 대한제국의 위상을 상징하는 역사의 감춰진 현장인 셈이다.

    각국 공사관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어떤 흔적이 남아있을까. 러시아공사관(사적 253호)은 6·25전쟁 때 파괴돼 3층짜리 전망탑만 겨우 남겨진 상태. '회현동 2가 78번지'에 있던 벨기에영사관(사적 254호)은 아예 건물이 통째로 '사당동 네거리'쪽으로 옮겨진 지 오래다. 프랑스공사관이 있던 자리(창덕여중 구내)에는 정초석 하나만 남아있고, 건물이 완전히 사라진 독일영사관이나 이탈리아공사관 자리는 그 위치조차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근대 서울의 역사문화 공간'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출판사는 앞으로 '손탁호텔' '광화문 육조 앞길' 등을 잇달아 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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