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때 식탐은 음란함 일으키는 죄악이었다

    입력 : 2012.01.07 03:25 | 수정 : 2012.01.07 05:22

    제7대 죄악, 탐식
    플로랑 켈리에 지음|박나리 옮김|예경|240쪽|1만9800원

    서기 365년, 저명한 수도자인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8가지 악덕의 목록을 작성했다. 이 목록에서 절제와 금식에 반대되는 개념인 탐식(貪食)이 첫 번째 유혹이고, 색욕(色慾)은 두 번째 유혹이었다. 프랑스 역사학자 플로랑 켈리에는 신간 '제7대 죄악, 탐식'에서 '탐식과 색욕'이라는 '사악한' 한 쌍이 이때 탄생했다고 말한다.

    6세기 말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8대 악덕의 차례와 항목을 바꿔 '칠죄종(七罪宗)'으로 정리했다. 칠죄종은 그 자체가 죄이면서 동시에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로, 중세 도덕과 문화의 바탕을 이루며 모든 신도에게, 특히 후대에 생겨난 탁발수도회, 성 도미니크 수도회,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보급되었다. 일부 수정을 거쳐 지금은 교만, 탐욕, 색욕, 분노, 탐식, 질투, 태만 등을 가리킨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탐식이 어리석은 기쁨, 음란함, 지나친 수다 그리고 감각기능의 약화라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 등장한 가톨릭교도들의 간소한 식사 습관은 피상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의 겉모습에 불과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금육(禁肉) 기간에 상류층 가톨릭교도들은 가장 신선하고 고급스러운 생선을 배불리 즐겼을 뿐 아니라 거북이, 비버, 검둥오리, 흑기러기, 달팽이, 개구리 등 육식과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동물을 먹었다. 중세부터 전해 내려온 금육 기간의 요리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16~17세기 내내 발전을 거듭했다.

    17세기의 가장 유명한 프랑스 요리 개론서인 '프랑스 요리사'(1671)에는 금식일을 위한 조리법으로 양파와 파슬리를 넣어 살짝 조리한 굴 스튜, 백포도주에 향료를 섞어 만든 구운 대하나 바닷가재 수프, 가재와 아스파라거스를 넣은 포타주 등이 소개돼 있다.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가톨릭 성직자에 대해 "그들은 자기네 배(腹)가 신이며 음식이 곧 종교"라고 비꼬았고, 르네상스기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부자들에게 음식을 바꾸는 일은 즐거움의 원천이다. 부자들이 금육(禁肉)을 하는 날이야말로 먹는 낙을 최고로 누리는 날이다"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선 미식 애호가들이 "먹고 마시는 쾌락으로 말미암아 외설적이며 무절제하고 방탕한 행동을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미각의 쾌락은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다. 미각의 쾌락은 신이 바라는 것이기에 이러한 애호 역시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16~18세기를 중심으로 미식가 또는 식도락(食道樂)의 문화를 짚은 저자는 현대 사회에 들어 '탐식의 죄'가 부활했다고 말한다.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영양학적 견해 때문에 탐식하는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탐식이 사회적·도덕적·심리적인 약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음식을 먹는 사람의 생리적 만족과 사람들 사이의 교류에 핵심적인 것은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쾌락"이라며 "교양 있는 식도락이건 저속한 대식(大食)이건, 탐식을 합법적인 즐거움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인간적 교류와 대화"라고 말한다. 달팽이 요리와 와인을 즐기는 프랑스인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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