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쓴 최윤의 서늘하고도 따뜻한 장편

    입력 : 2012.01.07 03:24

    오릭맨스티
    최윤 장편|자음과모음|232쪽|1만1000원

    최윤(59)의 장편 '오릭맨스티'를 읽는 동안, '영세하고 소심한 욕망들의 경연(競演)'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욕망의 경연은 한국사회에서 줄기차게 반복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현상이므로, 이 생각의 방점은 '영세하고 소심한'에 있다. 예외적인 인물들의 거대한 욕망이 아니라, 평균적인 젊은 남녀의 구차한 욕망들. 백화점에서 프라이팬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이면 동네 전철역 주변 상가에서 프라이팬 네 개 세트와 브래지어 하나를 살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새댁. 연립주택 반지하에 살면서도 최고급 외제차의 사양(仕樣)은 줄줄 외고 다니는 신랑. 살림 좀 불려보겠다고 증권투자 시작했다가 중년의 상담사와 바람을 피우고 결국은 사기까지 당하는 아내. 지방 출장 갈 때마다 거리의 여자들에게 욕망을 배설하는 남편.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들키지 않았으니, 집안 살림 거덜내지는 않았으니 별문제 없는 것 아니냐고 자위하는 영세한 부부. 작가는 연애와 결혼에서 시작해 불륜·낙태·출산, 그리고 마침내 파국으로 이어지는 이 영세한 욕망의 지옥도를 습기 한 방울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냉정하게 전달한다.

    요령부득으로 보이는 이 장편의 제목은 그 파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벨기에로 입양된 아이의 주문. 파국의 후유증으로 발작과 혼절이 속절없이 이어지고, 깨어날 때 즈음 속삭이듯 내뱉는 언어다. 한국어도 어느 나라 말도 아닌 이 주문은 뜻으로 번역되지 않는 언어의 신비로운 지대지만, 마치 황혼녘 신비로운 태양처럼 치유의 기능이 있다. 기존 체제와 기성세대로부터는 한 톨의 희망도 갖지 못하는 작가가, 평생 신뢰했던 언어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회색눈사람'으로 동인문학상을, '하나코는 없다'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8년 만에 쓴, 서늘하고 따뜻한 장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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