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리'를 뛰어넘는 짝퉁 이소룡의 인생 역전

    입력 : 2012.02.11 03:06

    천명관의 새 장편소설… 폭죽처럼 팡팡 터지는 이야기의 불꽃놀이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2

    천명관 장편|예담|1권 412쪽·2권 373쪽
    각권 1만2800원

    무려 800여쪽에 이르는 천명관의 세번째 장편소설을 읽고 나서 문득 빨간색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졌다. 천덕꾸러기 서자로 투명인간처럼 지내던 주인공 도운이가 처음으로 간절히 소망했던 50㏄ 오토바이.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결국 현대인의 부서진 꿈과 좌절된 욕망에 대한 천명관 특유의 불꽃놀이다. 이야기나 서사보다는 '구라'라는 속세의 용어가 더 맞춤한 이 불꽃놀이는 한번 올라타면 계속 액셀을 밟고 싶어지는 오토바이처럼 탄력과 가속을 받아 밤하늘로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800쪽 은하계 저 마지막 경계에서 아찔한 질주를 마친 천명관의 주인공들은 마치 몰리에르의 희곡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그곳에서 평생을 '짝퉁'으로 살았던 도운의 인생은 구원을 얻고, 부서진 꿈을 괄호 속에 넣고 살았던 독자들은 작지 않은 위로를 얻을 것이다. 비록 찬란하게 피었다가 허망하게 꺼져버리는 찰나의 위로라 할지라도.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30년에 걸친 대서사시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화자인 상구의 시선에서 응시한 삼촌 도운의 이야기. 할아버지가 아무도 모르게 바깥살림을 차려서 얻은 자식이었던 삼촌은 친모가 죽어 의지가지없는 신세가 되자 상구의 집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이미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난 처지. 거두어준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선심이다. 이렇듯 태생부터 '짝퉁'이었던 삼촌에게 당대의 스타 이소룡은 불세출의 영웅이었고, 남들이 '짝퉁'이라 부르든 말든 영웅의 삶을 흉내 내며 되짚는다. 이 30년을 서술하는 천명관의 재능은 폭죽처럼 펑펑 터지고, 이제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는 또 이야기를 낳으며 수많은 자식·손주로 무성하게 뻗어나간다. 도운 개인의 자서전으로 읽자면 고향인 시골 동촌에서 동네 양아치들과 치고받다 야반도주해 중국집 배달원, 권격(拳格)영화 으악새 배우(으악하고 비명 한번 지른 뒤 죽어나가는 단역배우)로 살면서도 마침내 평생을 원했던 사랑과 맺어진다는 기적의 해피엔딩. 70년대 산업화, 80년대 민주화, 90년대 자본주의사가 무대 뒤에 펼쳐지는 가운데 끝까지 꿈을 잃지 않았던 짝퉁 인생은 인생 종착역에 이르러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한다.

    외롭고 신산스러운 늪의 삶일지라도 유머와 해학을 잃지 않는 작가의 폭죽은 시도때도없이 펑펑 터지는데, 그중에서도 몸피를 불리겠다며 호떡 100개를 꾸역꾸역 우겨넣은 동네 건달 도치가 윗건달 토끼, 그리고 도운에게 보여주는 장쾌한 스펙터클(55~64쪽)은 도저히 잊기 힘든 웃음의 진경이다.

    기대하는 바에 따라 문학에 대한 다양한 요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소설은 이야기 그 자체의 힘이라고 믿는 독자에게 천명관은 자신에 대한 지지를 또 한번 제청하게 만드는 장편을 다시 한번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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