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들이여, 폼 잡지 말고 척하지 맙시다"

    입력 : 2012.02.11 03:06

    김정운 교수는 대한민국 남자들에게“이제 폭탄주를 치우고 당신만의 이야기를 꺼내라”고 말한다. /21세기북스 제공

    남자의 물건

    김정운 지음|21세기북스|336쪽|1만5000원

    "인터뷰가 너무 훌륭해 감탄했는데, 뭡니까 앞부분에 있는 거, 신문에 이미 썼던 칼럼은 대체 왜 넣은 거예요?"

    "그게 인터뷰만으론 책 한권이 안 돼요. 그리고 그거 진짜 잘 쓴 글 아냐? 그렇게 잘 쓴 건 한번 더 써도 돼."

    다른 필자였으면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그게, 출판사에서 넣자고 해서…."

    칼럼과 인터뷰로 짜인 새 책 '남자의 물건'을 낸 김정운(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은 글쟁이의 트레이드마크인 염결성(廉潔性)이 없다. 그에겐 없는 게 또 있다. 우선 겸손. "겸손은 지독한 오만함"이며 자기는 잘난 척해도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에 대한 내 질투심은 말도 못했다. 그러나 황 교수는 목소리도 참 특이하고 짧은 다리에 바지도 짧게 입고 다녀 나름 위안이 되었다…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키도 크고 생긴 것도 멀쩡하다. 도무지 나와 비교해 위안이 될 것이 없다. 김난도 교수는 사람까지 착하고 순수하다. 그가 쓴 책은 나름 베스트셀러인 내 책의 몇배나 팔렸다. 환장한다." 이렇게 대놓고 쓸 수 있다면 열등감이 없거나, 적어도 없는 척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에 대한 강박도 없다. "나는 요즘 아들에게 한 가지 조언만 한다. 결혼은 될 수 있으면 늦게 해라…그리고 결혼은 마흔다섯 살에 스물다섯 살 처녀와 해라. 그래야 남는 인생이다." 여성들이 아우성친다며 이런 말도 적었다. "그대들의 딸도 마흔다섯에 스물다섯짜리 총각하고 결혼하라고 해라. 그대 딸들은 그래도 되는 시대가 온다."

    "소풍 가도 도시락 먹을 친구 하나가 없었다"는 김정운은 지금 주변에 사람이 들끓을뿐더러 심지어 인기까지 있다. 삶의 태도는 명확하다. 수컷들이여, 폼 잡지 말자 척하지 말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데 그는 여기에 독일에서 배운 심리학, 인문학적 분석으로 '아우라'를 더한다.

    각자의 물건, 즉 애장품을 내놓고 김정운과 인터뷰를 한 사람은 학자 이어령, 대학교수 신영복, 축구선수 차범근, 정치인 문재인, 배우 안성기,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 경기도지사 김문수, 유영구, 화가 이왈종, 소설가 박범신이다. 그들의 내면을 보는 시각, 한마디에 사람들에 대한 심리학적, 인문학적 '썰'이 볼 만하다.

    겸손한 인간성으로 유명한 안성기를 두고 이렇게 썼다. "안성기의 스케치북을 펼치면 바로 첫페이지에 자화상이 나온다. 겸손한 사람은 절대 자화상을 그리지 못한다…자기 절제와 인내로 이뤄낸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다." 안성기의 스케치북을 다 보고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안성기는 교만하다." 물론 돈 많은, 권세 있는 이들의 교만과는 격이 다른 교만이다.

    김정운은 어릴 적 "너 그러다 조영남처럼 된다"는 잔소리를 듣고 자랐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면 이혼하고 뜨내기가 된다는 뜻. 어머니의 '한우물론' 영향으로 김정운은 "제일 못하는 공부만 죽어라 했다." 그는 조영남의 외모 특징을 네모진 안경으로, 심리적 특징을 '비현실적 낙관주의'로 설명한다. 죽을 때까지 자기는 행복할 것이란 확신이 주는 안도감, 바로 그것을 대중에게 쏴댐으로써 조영남은 현존 연예인(송해씨는 제외다) 중 작년에도 올해에도 바쁜, 늙은 나이까지 유효한 연예인이 됐다는 것이다.

    어느 행사에서 사회를 보던 김정운이 이렇게 말했다. "김문수 지사님은 다 좋은데 가난해 보여요" 썰렁해졌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에 촌스럽고, 차려입어도 촌스러운 김문수의 촌티 나는 양지 다이어리에서 김정운은 '기록, 사실의 냉정함'을 존중하는 김문수의 매력을 끄집어냈다.

    문재인의 '하,하,하' 웃음을 두고는 '난처한 웃음'이라 했다. "지금 내 입장에 동의하는 건지, 아닌 건지 도무지 파악하기 어려운 웃음…그는 항상 공손하다. 그의 이런 태도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오히려 '나쁜 사람'이 되는 그런 표정과 웃음이다." 김정운은 이제 현실 정치가가 된 문재인과 바둑판을 두고 얘길 나눴다. 자기 상황을 두고 "그냥 참는다" "그저 견딜 뿐"이라는 얘기를 반복하는 문재인에게서 그는 한수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한번만 물러달라'고 요구하지 않기 등 바둑 원리 같은 삶을 사는 문재인의 성격을 읽어낸다.

    '불필요하게 상대방을 긴장하게 만드는 진보주의자의 경직된 표정을 느낄 수 없는' 신영복을 그는 '고통의 인본주의'라 명했다. "고통을 견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평화로움이 어설픈 관념의 긴장을 녹여준다"고 표현했다. 신 교수의 물건은 벼루다.

    '무서운 오은미 여사'의 남편인 차범근에게 계란받침대는 무슨 의미인지, 따뜻한 디지털 '디지로그'식으로 살고 있는 학자 이어령에겐 왜 3m짜리 책상이 필요한지, 유영구 전 KBO 총재가 고지도(古地圖)에서 어떤 지혜를 얻었는지, 다시 태어나면 '아버지' '결혼' '소설'은 안 하고 싶다는 까칠한 박범신이 왜 목각수납통을 앞에 두고 목수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지, 한국화에 시비를 걸어 한국화를 살려낸 화가 이왈종이 왜 그토록 수동 면도기를 아끼는지 술술 써내려갔다.

    룸살롱과 아이폰의 공통점은 '터치'라 주장하는 김정운은 곳곳에 '자기 비하 유머'를 심어놓고 한국 남자들에게 권한다. "당신도 정치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좀 해봐." 그 가상함에 여자들의 지갑이 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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