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김주영, 노년에 참회록을 쓰다

    입력 : 2012.05.14 03:08

    [思母曲 소설 '잘가요 엄마'] 42년 작가인생 솔직하고싶었다
    쓰다가도 고민·유혹에 발목… 여인잔혹사였던 모친의 삶
    소년 김주영, 정말 못된 아들… '누더기 같던 가정사' 털어놔

    사모곡(思母曲)이기보다는 참회록이었다. 읽은 소감을 건네자, 그는 양은 사발 가득히 따른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참회록이라…… 맞아요, 내가 진짜 못된 아들이었거든. 이 책은 어머니에 대한 내 후회와 참회가 맞습니다."

    지난주 작가 김주영(73)의 장편 소설 '잘가요 엄마'(문학동네)가 출간됐다. 그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칠순이 훌쩍 넘은 원로 작가가 근력 좋게 새 장편을 써냈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이 책이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는 귀띔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어머니가 세상을 뜬 것은 지난 2010년 봄. 직후부터 작가는 고백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의 표현을 빌면,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들었던 '누더기 같은 가정사'였다. 막걸리 한 잔을 더 마신 후 그가 보인 특유의 파안대소는, 차라리 위악(僞惡)으로 보였다. "100% 사실만 적다 보니, 소설 쓰는 거보다 쉽더구만."

    작가 김주영은“어머니의 삶을 이대로 묻어버릴 수는 없다는 심정이었다”면서“한미한 삶을 살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시대변화를 겪으며 도매금으로 정리되어버린 것은 아닐까”라고 물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경북 청송이 고향인 작가 모친의 삶은 조선여인 잔혹사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았던 삶. 남들은 두 번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혼례는커녕 혼인신고도 해 본 적이 없었던 여자. 작가는 '두 번의 사기 결혼'이라 불렀다. 첫 결혼은 일제 시대 친정 오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마을 유지에게 부탁하면 아들의 징집을 피할 수 있다는 허황된 얘기를 들은 일자무식 외할아버지는, 그 유력자의 유부남 아들에게 딸을 시집보냈다. 하지만 오빠는 군대에 끌려갔고, 유부남이었던 남편은 오래지 않아 처자식을 버렸다. 작가가 아직 젖먹이였던 시절이었다.

    두 번째 남자도 그랬다. 제 입 풀칠도 어려운 형편에 외삼촌 식구들까지 부양했던 어머니는, 한 재산 있다는 남자와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그가 땡전 한 푼 없이 입만 거창했던 사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어머니는 그 남자까지 먹여 살려야 했다. 글자는커녕 숫자도 모르는 일자무식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의 집 농사 품앗이와 부엌일 거들기가 전부였다. 작가는 어머니의 삶을 "소름끼칠 정도로 과부하가 걸린 노동"이라고 불렀다.

    '소년 김주영'의 일탈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연히 효자의 길을 걸어야 했지만, 여자의 개가(改嫁)에 극히 엄격했던 지역적 특수성이 그를 엇나가게 만들었다. 새 아버지를 맞았다는 부끄러움과 수치에 비하면, 도시락 한 번 제대로 못 싸간 가난은 차라리 참을만한 것이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작가 아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 앞에 나선 적이 없었다. 평생을 고향에서, 의붓아버지와 낳은 동생네와 함께 살았다. 5년 전 정부가 '장한어머니상' 수상자로 선정했지만, 어머니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내심 그런 어머니와 동생이 고맙기도 했던, '비겁한 인생'이었다.

    이번 글을 쓰면서도 여러 유혹과 고민이 발목을 붙잡았다고 작가는 고백했다. 소설적 형식을 빌려 두루뭉술하게 써도 되는 것은 아닐까, 자식과 사위·며느리는 물론 점잖은 사돈 명예에 폐가 될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그는 42년 작가인생과 자신의 독자들에게 정직하고 싶었다고 했다. 초등생 아들의 소풍 도시락을 싸기 위해 온 동네를 뒤져 놋주발 하나를 빌려왔던 가난한 어머니, 아들이 서울에서 집 장만을 했다는 소식에 평생 처음 9시간 걸려 상경한 후 하룻밤만 자고 고향으로 내려갔던 결벽, 혹시나 싶어 빨간 립스틱 하나를 비닐백에 넣어두고도 평생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안타까운 삶. 작가는 "신사임당이나 한석봉 어머니만 좋은 어머니인 것은 아니지 않겠나"라며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작가의 사적인 고백이 보편적 의미로 확장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대목이다. 위인전에 나오는 '위대한 어머니'는 아닐지라도, 자식과 집안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우리들의 어머니. 이 책에서 누군가는 사랑을, 혹은 죄책감을, 때로는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도,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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