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배려로 포장된 위선… '미국판 강남좌파'에 하이킥

    입력 : 2012.05.26 03:15

    아메리칸 스타일의 두 얼굴
    크리스천 랜더 지음|한종현 옮김|을유문화사|256쪽|1만2000원

    '백인들은 유기농 식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이들은 작업복을 입고 트랙터를 모는 농부가 살충제를 쓰지 않고 유기농 농산물을 키운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유기농 식품은 거대 기업이 생산하고 있고, 농산물 가격 인상의 구실이 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유기농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캐나다 출신 작가 크리스천 랜더(Lander)는 2008년 1월 블로그에 백인들의 위선을 꼬집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중산층 백인의 허위의식을 재치 있게 비트는 이 블로그에 네티즌이 몰렸다. 그해 7월 블로그 글을 묶어 낸 이 책(원제 백인이 좋아하는 것·Stuff White People Like)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블로그 개설 4년 반 만에 9000만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랜더는 고학력의 리버럴한, 혹은 리버럴한 체 하는 백인을 과녁으로 삼는다. 그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줄 의료서비스에 모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무상의료를 열렬히 지지한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건강할 때만 그렇다. 자기가 MRI를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 말이다. 자식이 없을 때, 공립학교를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요타 프리우스는 가장 완벽한 백인다운 제품이다. 고급인 데다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그 외에 어떤 부담이나 생활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재활용은 백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즉 크게 힘들이지 않고 지구를 위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쓰레기를 만드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재활용은 매우 중요하다. 재활용을 할 수 있다면 쓰레기를 만들어도 되기 때문이다.

    랜더의 글은 중산층 백인들이 '쿨'하게 보이려는 과시욕을 음악, 음식, 패션, 영화, 드라마 같은 일상에서 찾아낸다. "스테레오검이나 플럭스블로그가 없다면 죽어버릴 거야." "조애너 뉴섬이 오늘날 가장 독창적인 아티스트야." 독자들은 스테레오검이나 조애너 뉴섬을 몰라도 전혀 불안해할 필요 없다. 생소한 인디음악을 즐길수록 음악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일 뿐이다. 이 책엔 이런 리스트가 150가지나 실려 있다.

    이들은 선댄스, 토론토, 칸 영화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주류'에 속하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거의 강박적으로 외국 영화와 인디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낫다고 말한다. "요즘은 세르비아 영화에 푹 빠져 있거든요. 밴쿠버 영화제의 세르비아 영화 회고전은 정말 대단했어요" 하는 식이다.

    이들은 유기농 홉만 사용하는 소규모 맥주집을 선호하고, 마라톤과 인디밴드를 즐기며, 건축에 관한 크고 두꺼운 책을 선물 받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애플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창의적이고 특별한 사람임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한다. '창의적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창의적으로 웹사이트를 검색하고, 창의적으로 DVD를 시청하기 위해'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같은 애플 제품을 사랑한다.

    백인들의 완벽한 일요일은 대개 다음과 같다. 오전 8시 45분 정도에 일어나 배달된 뉴욕타임스 일요판을 집어들고 커피포트의 물을 데운다. 커피와 음식, 신문이 준비되면 재즈나 클래식, 좀 더 세련된 사람은 '앰비언트 트립 합'(재즈·블루스에 힙합이 섞인 음악)처럼 부드러운 음악을 튼다. 신문을 읽어 나가다가 가끔 파트너에게 방금 읽은 뉴스를 이야기해준다. "아프리카에서 또 한 번 내전이 일어날 것 같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하고 있는 거 알았어?"

    번역서는 '미국판 강남좌파의 백인문화 파헤치기'란 문구를 표지에 넣어 호기심을 유발한다. '백인은~' 하고 시작하는 랜더의 글이 지나치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거나, 견강부회도 있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쿡쿡 하고 웃게 만드는 대목이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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