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에게 선덕여왕이란? "여자가 무슨 정치를 한다고…"

    입력 : 2012.07.28 03:06

    같은 사건도 달리 본 삼국사기·삼국유사

    김부식과 일연은 왜
    정출헌 지음|한겨레출판|296쪽|1만3000원

    "역사란 역사가와 그가 살던 시대가 공모하여 만들어낸 '거대한 허구'에 다름 아니다."

    도발적 주장의 근거는 우리의 고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두 책이 그려낸 삼국의 역사는 딴판이다. 기술 방식은 물론, 같은 사건조차 찾기 어렵다. 12세기 유학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가 사대적·귀족적·유교적이라면, 13세기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자주적·서민적·불교적이다.

    저자는 두 책을 나란히 세워놓고 같은 사건을 다루는 두 남자의 시각차를 뜯어봤다. 신라 눌지왕(재위 417~458) 때의 충신 박제상에 대한 기록을 보자. 고구려와 왜(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던 왕의 두 동생을 구출해내고 끝내 자신은 왜국에서 죽임을 당한다는 골격은 같다. 하지만 결말은 사뭇 다르다. '삼국사기'는 두 아우를 찾은 왕의 흥겨운 잔치가 피날레. 박제상의 비통한 죽음이나 지아비를 잃은 아내의 절절한 슬픔 같은 건 없다.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김부식은 박제상의 죽음을 '충절의 끝'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 '삼국유사'의 결말은 지아비를 기다리던 부인이 신모(神母)가 되었다는 이야기.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통곡하다 죽었다. 그래서 부인을 치술신모(��述神母)라 하는데…." 극한의 고통을 겪은 인간이 급기야 신적 존재로 승화한다는 일연의 믿음.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급급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드러난 대목이다.

    우리가 접하는 삼국시대 여성의 모습은 결국 두 남성의 프리즘에 굴절돼 그려진 상이라는 게 책의 골격이다. 특히 근엄한 유학자 김부식은 여성을 일부러 다루지 않거나 혹평한다. 선덕여왕에 대해선 불편한 심경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한데, 어찌 늙은 할멈이 안방에서 나와 나라의 정사를 처리할 수 있겠는가?"

    신념에 따라 서술하다 보니 왜곡된 사실도 생겼다. 온달과 평강공주(삼국사기), 서동과 선화공주(삼국유사)의 로맨스가 대표적. 저자는 온달의 실존에 의문을 제기하며 "평강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양강왕 때 전사했다는데, 죽은 아비(양강왕)가 아들(평강왕)을 계승해 왕위에 올랐다는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범한 것"이라 썼다. 국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온달의 '충절담'을 싣기 위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김부식 스스로의 원칙까지 위반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일연도 마찬가지. "마한(馬韓)을 세운 무강왕의 어린 시절을 백제 무왕의 어린 시절로 바꾸는 오류를 범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김부식과 일연이 덧칠한 삼국의 모습을 낱낱이 비교·해부한 시도가 돋보인다. 사례들이 흥미진진한 데다 짜임새 있는 기획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저자의 해석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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