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이 古典 된 건 마케팅(1862년 11개국 동시 출간) 덕이었다

  • 임지현·한양대 사학과 교수

    입력 : 2012.07.28 03:06

    '괴짜' 만드는 생산자'
    - 꽃미남 작가' 와일드, 발자크의 흰 잠옷… 예술가의 이미지는 기획되고 포장된 것
    문화가 두려운 국가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반군국주의 우려한 美, 1979년에야 무삭제판
    '고매한' 취향의 소비자
    - 생산자·국가가 어떻든 '섹스·폭력' 잘 팔려

    유럽문화사(전5권)

    도널드 서순 지음|오숙은·이은진·정영목·한경희 옮김
    뿌리와 이파리|각 권 2만8000원


    '나가수'에 돌아온 가수 임재범을 보고 울먹이는 돈암동 '희주'씨.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하모니가 연주하는 셴베르크의 '정화된 밤'에 감동의 오열을 간신히 억누르는 베를린 아줌마 '영'. 둘 사이의 문화적 차이는 무엇인가? 아니 도대체 다르기나 한 것일까?

    논리적으로 유추하면, 저자 서순(Sassoon)의 대답은 아마도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일 것이다. 삶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하는 생활양식으로서 문화라는 점에서 '희주'씨와 '영'의 문화는 같지만,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분기점에서는 갈라지는 것이다.

    절대론적 문화관을 부정하고 상대론적 문화론에서 출발하는 서순은 '문화의 서열화'를 비판하지만, 이미 독자들의 마음 깊숙이 위계화된 문화적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화적 민주주의자로서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문화의 위계질서를 뒤흔드는 저자의 서술 전략은 질문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 책에서 도널드 서순은 시종일관 복수의 문화가 같으냐 다르냐는 질문을 버리고, 누가 문화적 가치의 위계와 정전(正典)을 정하는가 하는 구성주의적 질문을 던진다. 어느 문화가 더 좋다는 식의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권력, 더 좁게는 문화 권력이다. 작가·예술가·출판업자·신문기자·역사가·비평가·국가 등 문화 생산자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도 이 구성주의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예술가 신화를 만든 마케팅

    문화 권력의 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문인들의 기행, 파격적 예술가들, 미치광이 천재들에 얽힌 이야기들은 더 이상 스캔들이나 기담 차원이 아니라 문화 권력을 만들기 위한 치밀한 연출과 연기의 합작품이다. 많은 부분이 만들어진 괴짜인 것이다. 평범하게 태어나 보헤미안으로 만들어진 예술가들에 대한 예(例)는 풍부하다 못해 넘친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뮤지컬로 만든‘레 미제라블’. 이 소설은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세계 동시출간을 통해 붐을 일으켰다. 도널드 서순은‘유럽 문화사’에서 19세기 이후 200년간 유럽에서 문화산업이 어떻게 형성돼 발전·확산됐는지 꼼꼼히 보여준다.
    프랑스 문단의 아이돌 발자크는 초상화가들에게 늘 잠옷처럼 목에서 발까지 떨어지는 흰 무명 가운의 실내복을 입은 모습만을 그리도록 허용했다. 대중매체의 삽화들이 이 모습을 따라 그리자, 창작에 몰두하느라 의상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발자크의 이미지는 완성되었다(내가 기억하는 클림트의 사진도 하나같이 잠옷 모양의 가운 차림이다).

    꽃미남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이미지를 만든 것도 미국 여행을 기획한 출판업자였다. 옥스퍼드대 출신 탐미주의자로 만들어 미국인의 문화적 열등감을 파고들려는 출판업자의 기획에는 지독한 독설가였던 와일드조차도 고분고분했다. 1862년 4월 3일 11개국 동시 출간이라는 전 지구적 마케팅이 없었다면, '레 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누린 상업적 성공과 대중의 열광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찰리 채플린은 천재의 전형이기보다는 수완 좋은 사업가였다.

    국가는 시장의 문화 생산자들보다 훨씬 더 난폭하게 간섭했다. 나치 돌격대가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상영하는 베를린의 영화관에 악취탄을 던지고 생쥐를 풀어놓은 것은 그렇다 쳐도, 원본 소설의 지나친 반군국주의를 우려하는 군산 복합체의 국가 미국은 1979년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무삭제판 출간을 허용했다. 소련에서도 레마르크의 이 소설은 판매 금지와 복권(復權)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나치·일제는 '라디오 집착'

    20세기 들어 문화 생산자로서 국가의 역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됐다. 라디오와 영화는 그 인기 때문에 그냥 놔둘 수 없었다. 이 책의 주제는 아니지만, 일본 제국의 관리들은 '황국 신민들'이 라디오를 제때 청취하지 않는다고 불평이 컸다. 나치는 더 노골적이어서, 라디오를 '인민의 수신기(Volksempf nger)'라 불렀다. 나치만큼은 아니지만, 라디오를 통한 국민 설득에 매달린 것은 미국의 루스벨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소비자도 나름대로 괴짜였다. 많은 경우 소비자들은 생산자들의 기대를 보란 듯이 배반함으로써, 자기들도 어엿한 역사적 행위자임을 과시했다. 20세기 초 독일 전역에 있는 사회주의 도서 대여점 1147곳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버림받았다. 노동자들이 즐겨 찾은 것은 어린이 책과 대중 소설이었다. 당과 사회주의 이념 출판물은 싸구려 책과 오락거리를 제공한 상업 출판사들과 경쟁하기 어려웠다.

    톨스토이 문학의 소비도 예측불허였다. 프랑스에서는 가톨릭 보수주의자들이 반겼는가 하면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주의 문학의 정전처럼 읽혔다. 출판업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랐다. 민족문화를 세우려는 19세기 문화 생산자들 역시 고전(苦戰)했다. 민담이 글로벌했다면, 민속은 지나치게 지방적이었다.

    ◇소비자, 취향으로 반항하다

    민담이든 소설이든 인기를 누리려면 '섹스'와 '폭력'이 필요했다. 많은 경우 도덕적 결론은 섹스와 폭력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편리한 핑계였다. 민족적 정통과 국체를 세우려는 민족 이야기는 섹스와 폭력 이야기에 밀렸다. 민족의 고전으로 남기 위해 에로티시즘이 거세된 춘향전이 얼마나 읽힐지는 의문이다.

    1800년부터 유럽인들이 자기네 삶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시킨 생활양식으로서 문화는 이처럼 변화무쌍한 행보를 남겼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생산자들 간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갈등도 그렇지만, 역사적 행위자로서 소비자들의 개입은 근대 유럽의 문화에 생산적 긴장을 불어넣는 힘이었다.

    유럽 역사학계에서 홉스봄의 후학으로 소문난 저자 서순은 마르크스주의적 문화사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1800년의 귀족이 2000년의 평범한 상점 점원보다 문화적으로 더 궁핍했다는 혜안은 단순한 진보주의자의 관점이기보다는 인류학적 사유의 풍요로운 편린을 드러낸다. 번역도 잘 읽힌다.

    간혹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긴장을 잃고, 생산자 중심주의의 서술로 흐르는 것은 옥의 티이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