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식욕 부르는 '글 한상'

    입력 : 2012.07.28 03:06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박찬일 지음|푸른숲|340쪽|1만2000원

    이 책은 펴는 순간 은근한 복숭아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때론 참기름 내가 진동한다. 반투명한 여름 오징어 자태가 아른거리고, 속초 바닷가 양미리 구이집의 연기가 눈을 자극한다. 닫을 무렵이면 자욱하게 밀려오는 추억에 가슴이 얼얼하다.

    글발 좋은 요리사가 혀를 달래고 기억을 어루만져주는 새 책을 냈다. 책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예각(銳角)과 서정(抒情). 강남의 스타 셰프였던 저자는 '서울 변두리 출신의 촌스러운 입맛'을 자칭하며 평범한 한 그릇과 함께한 순간을 예리하게 벼려 서정으로 버무렸다. 서해안 갯벌의 맛을 다부지게 보여주는 바지락 칼국수, 배를 뚝 갈라 간장으로 간을 맞춘 부추만두, 식은 후에 죽죽 찢어 먹는 하늘하늘한 배추전이 책장마다 황홀하게 차려진다.

    책의 절정은 미식이나 포식이 아니라 허기와 궁기를 말할 때 나온다. 작은 닭 한 마리로 고아낸 양동이 분량의 닭백숙은 적은 돈으로 온 가족을 배불리 먹여야 했던 아버지가 선택한 슬픈 요리였다. 짜장면이 우리를 그토록 사로잡았던 것은 먹는 일이란 얼마나 위대하면서도 쓸쓸한지 깨닫게 해주는 마력에 있었다.

    밤에는 읽지 마시라. 연락이 끊긴 옛 친구의 전화번호를 찾으려 서랍을 뒤지거나, 만장하는 식욕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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