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모성애도 사치… 삶이 귀찮다는 日 청춘들

    입력 : 2012.09.22 03:18

    아빠뻘 남자와 결혼, 아동 학대하는 부모
    고령화 문제 이면엔 꿈 잃은 청년들 존재

    장수대국의 청년보고서
    전영수 지음|고려원북스|448쪽|1만6000원

    일본에서 유명한 코미디언 가토 차(69)는 지난 3월, 23세 여성과 결혼했다. 46세 연하다. 35세 연하 여성과 결혼한 70세 배우, 22세 연하 여성과 결혼한 70세 유명 MC도 있다. 연예인뿐이 아니다. 한 회원제 결혼상담소에선 성혼(成婚) 커플 중 나이 차이가 11~13살인 비율이 2006년 13%에서 2011년 38%로 3배 늘었다. 일본 젊은 여성들은 패기도 없고 미래도 어두운 동년배 초식남(草食男)보다, 생활이 안정된 '아저씨'와의 결혼을 꿈꾼다. '아빠뻘 신랑'이 유행이다. 중년남성을 따라 하는 '오야지(=아저씨) 걸' 스타일, 귀찮은 연애보다 끼리끼리 만족을 추구하는 OL(직장 여성)들의 '조시카이(女子會)' 유행도 같은 맥락에 있다. 15~22세 일본 여성 2000명을 대면 조사해보니 희망직업 2위가 호스티스였다는 통계도 있다.

    "일본 위기의 핵심은 꿈을 잃은 청년들"

    경제전문지 기자 출신인 저자는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등 저서를 통해 고령화 사회의 문제에 천착해왔다. 그는 "일본 위기의 핵심은 '꿈을 잃은 청년'이다. 일본보다 한발 늦었지만 앞날은 더 험로일 한국은 일본의 현재에서 위기 돌파의 힌트를 찾아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장수대국 일본 젊은이들의 좌절은 상상을 초월한다. 2011년 취업실패로 인한 10~20대 자살자는 150명을 넘었다. 그해 청년(15~24세) 실업률은 8.2%였고, 올 2월 대졸 취업률은 80.5%였다. 거품경제 시기와 비교하면 '슈카쓰(就活·취업활동)' 체감 경기는 '빙하기'다. 2011년 한국 젊은이들의 대졸 취업률이 51%에 불과했다는 걸 알면, 일본 청년들은 뭐라고 할까.

    취업해도 평생 고용은 옛말.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뿐인 '워킹 푸어(Working Poor)'보다 생활보호수급자로 사는 걸 선호한다. 연봉 200만엔인 워킹 푸어 월봉은 17만엔 수준. 생활보호수급자로 살면 한 달에 10~15만엔을 받는데, 여기에 세금·월세 등으로 받는 혜택을 감안하면 직장을 안 다니는 편이 낫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이성(異性)에도 관심을 끊고 산다. 일본 정부기관 조사에 따르면, 18~34세에서 성경험이 없는 남성은 2005년 31.9%에서 2010년 36.2%로, 여성은 36.3%에서 38.7%로 증가했다.

    내일을 기약 못할 암울한 현실, 청년실업, 결혼자금, 내 집 마련, 자녀 교육…. 저자는“우리보다 한발 먼저 고령화 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 위기의 핵심은‘꿈을 잃은 젊은이들’”이라고 했다. 사진은 2008년 12월 일본 도쿄(東京)의 한 공원에서 짐을 싸들고 걷고 있는 노숙자의 모습. /AP
    애 키우기 힘든 사회… 급증하는 아동 학대

    어렵게 결혼해도 암울하긴 마찬가지. 우선 결혼·임신 후 해고되면서 가정까지 붕괴되는 'HIKS(Half Income with KidS) 커플'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이슈는 출산을 위해 다른 도시로 수시간씩 원정을 가야 하는 '출산 난민' 현상. 분만예약은 예정일로부터 최소 6개월 전에 해야 하고, 임산부가 3차례 이상 진료를 거부당하는 사례가 매년 1000건 이상이다. 매년 100만명인 신생아 중 절반이 출산 난민 상태에서 태어날 운명이다. 이렇게 태어나도 아이들 7명 중 1명은 빈곤아동이다. 일하는 1인 부모세대의 자녀 빈곤율도 OECD 1위다.

    젊은이들의 좌절은 가정의 붕괴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점점 잔혹·엽기화 하는 아동학대다. 2010년 7월 일본 사회는 3살 딸과 1살 아들을 방 안에 가둬 굶겨 죽인 엄마 시모무라 사나에(23) 사건으로 충격에 빠졌다. 엄마는 경찰에 "밥해 주고 목욕시키는 게 귀찮았다"고 진술했다. 일본 사회에서 아동학대는 경기침체가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 부쩍 늘었다. 2009년 전국 201개소 아동학대 상담소의 상담 건수는 4만4210건으로, 1990년부터 19년간 무려 40배 늘었다.

    고령화 사회, 청년의 좌절에 주목하라

    사회에 고독과 불안이 넘치니 신흥종교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불교 계열인 창가학회나, 도쿄대 출신의 엘리트 교주(敎主)가 이끄는 '행복의 과학'처럼 정당을 만들어 정치세력화하는 신흥종교도 생겨났다.

    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가장 먼저 내동댕이쳐진 것은 노인 세대인 것이 사실. 빈약한 복지 안전망은 연명 수준에 불과하고, 길어야 55세면 옷 벗는 판에 근로소득은 언감생심이다. 자녀 뒷바라지에 예금통장도 깡통 신세다. 그러니 "노후 지원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엔 함정이 있다. 균형과 종합감각이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노인보다 청년들의 생활이 훨씬 열악하고 피폐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현실이 그걸 증명한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노인들이 '힘드니 나를 업어 밑에까지 데려가 달라'고 으름장 놓을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젊은이들의 등산길은 부모 세대보다 훨씬 험하고 길어졌다. 이제 막 산행에 오른 이들의 길을 막아서면 그다음은 공멸뿐이다. 자녀 세대가 아예 등산 자체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얘기지만 암울하다. 남의 얘기처럼 안 들려서 더 암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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