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젖·양젖도 있는데… 왜 '밀크=牛乳' 됐을까

    입력 : 2012.09.22 03:19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양 많고 생산도 편리…
    질병 원인으로 밝혀져 위험한 식품 됐다가 낙농장 살균 등 방책에 다시 '완전식품'으로

    밀크의 지구사

    해나 벨튼 지음|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244쪽|1만5000원

    인류는 기원전 7000년부터 가축의 젖을 먹기 시작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고대 스키타이인이 암말의 항문에 공기를 불어넣은 후 젖을 짜냈다는 기록이 있다. 본래 '밀크(milk)'는 게르만어 '메올크(meolc)'에서 왔다. '젖을 짜다'라는 뜻. 한국·중국·일본에서는 밀크를 '우유(牛乳)'로 번역하지만 인류가 마신 동물의 젖에는 소젖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밀크는 양젖·염소젖·말젖·야크젖·순록젖 등 인류가 가축으로 키운 포유동물의 젖 모두를 뜻한다. 그런데도 왜 '밀크=소젖'이란 뜻이 상식이 됐을까.

    신간 '밀크의 지구사'는 바로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19세기 이래 진행된 우유의 산업화 때문이다. 소젖은 양도 많고 생산도 편리하다는 장점 덕분에 다른 포유동물의 젖을 제치고 밀크의 대명사가 됐다.

    (오른쪽 사진)1930년대 미국에서 우유 소비를 독려하기 위해 만든 포스터. "우유 한 병은 건강 한 병" "어떤 시간에 먹어도 좋다"는 식으로 '우유 신화'에 기대고 있다. /corbis/토픽이미지

    밀크의 글로벌한 역사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 밀크는 식량과 물이 귀한 시기에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칼슘과 라이신, 비타민D 등 다양한 영양소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동물의 젖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세계 인구의 75~80%가 생유(生乳)를 소화시키지 못한다. 포유동물 대부분은 풀이 풍부한 계절에 새끼를 낳기 때문에 봄과 여름에 젖 분비기가 몰려 계절별로 밀크 생산량의 변동이 심하고 부패하기도 쉬웠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생유를 발효시켜 알코올성 요구르트 음료로 마시거나 끓여 먹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생유를 즐기지 않았던 문명이다. 대부분의 밀크가 마을과 도시 밖 목장에서 생산돼 신선도를 유지하기 힘든 데다 야만인과 교양 없고 촌스러운 유목민이나 먹는 음식이라고 비하했기 때문이다. 밀크 소비의 왕은 단연 아일랜드 사람들. 중세 아일랜드의 풍자시 '매콩글린의 환상'에는 밀크를 묘사하는 다양한 구절이 나온다. "매우 진한 밀크, 그리 진하지 않은 밀크, 진득한 밀크, 중간 정도 진한 밀크, 노란 거품이 부글대는, 씹어야 삼킬 수 있는 밀크…."

    동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은 우유와 고기를 함께 먹는 것을 금기시한다. 살아있는 소의 젖을 죽은 고기와 함께 먹는 것은 소에 대한 모독이라 믿기 때문. 다만 소의 젖에 소 피를 섞어 마실 수는 있다. 화살로 소의 목정맥에서 생피를 뽑아 소젖과 섞어 마신다. 주로 종교의식이나 병자의 원기를 회복시키는 데 이 '분홍색 밀크셰이크'를 쓴다.

    '하얀 묘약' vs '하얀 독약'

    한동안 밀크는 '하얀 묘약'으로 칭송됐다. 순수한 이미지라 신의 음료라 여겨졌고, 병든 이를 고치는 약으로도 숭배됐다. 소를 숭상하는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물소젖을 종교 정화의식에 썼으며, 이집트에서는 암소 모습을 한 여신 이시스에게 밀크를 바쳤다는 신화가 전한다. 치료제 역할도 했다. 해독제부터 피부 가려움증 억제제, 눈 연고 등에 쓰였고, 켈트 문화에선 소젖이 결핵 치료에 이용됐다. 클레오파트라는 피부 노화 방지를 위해 당나귀젖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세기 들어와 '우유 신화'는 무너진다. 유럽과 미국 도시에서 우유는 매우 위험한 식품이 된다. 질병과 사망의 주원인이었고 특히 아기들에게 더 위험했다. 우유 소비가 늘면서 도시에 낙농장과 외양간이 생겼고 배달망이 구축됐지만 대중의 건강에는 비극이었다. 낙농장은 지나치게 많은 소를 길렀고 환경도 지저분했다. 불결한 환경에서 키운 소는 대부분 질병에 걸렸고 이런 소에게서 짠 우유는 냉장도 하지 않은 채 저장됐다. 양조장 지게미를 먹여 키운 소의 쓰레기 우유, 밀가루와 분필 등을 섞은 가짜 우유, 표백 우유 등으로 인해 밀크는 더럽고 해로운 '하얀 독약'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아시아의 열등감을 자극

    이후 낙농장 감독, 저온 살균 등의 방책으로 우유는 가장 손쉽게 영양을 얻을 수 있는 완전식품으로 탈바꿈한다. 각종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1924년 미국 시카고 보건국은 분유를 연료로 넣은 기관차가 객차 다섯량에 고아 200명을 태우고 달리는 광고를 내보냈다. 우유가 영양 높은 완전식품임을 홍보한 것. 우유마케팅위원회는 파티 직전이나 직후에 우유를 한 잔 마시면 다음 날 숙취를 예방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20세기 후반부터 아시아 몇몇 국가에서는 우유 소비량이 빠르게 늘어났다. 우유가 지닌 '선진국' 이미지 때문이다.

    프리랜서 작가이자 언론인인 저자는 '묘약'에서 '독약'이 된 밀크의 역사와 이면을 각종 에피소드와 사진 자료를 곁들이며 들려준다. 책 말미에는 감수를 맡은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한국 우유의 20세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우유가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우유 공급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우유가 일본인뿐 아니라 식민지 조선인들의 육체를 서양인처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식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영양의 식민화'였다. 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지난 100여년 동안 경험해온 우유의 생산과 소비 과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구사적 맥락에서 전개됐다"면서 "이것은 '우유의 식민화' 과정이었다"고 분석한다. 해방 이후의 우량아 선발 대회, 1960년대 이후 태어난 '우유 키드' 이야기 등 우유에 얽힌 추억의 사연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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