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염증이 지휘 거장을 만들었다?

    입력 : 2012.09.29 03:14

    피아노에서 지휘로 전공을 바꾸고 베를린 필 장악했던 클래식계의 절대군주
    유년 시절 에피소드와 하숙집 주인 증언까지 새로운 기록들 담아

    카라얀 평전(2권)

    리처드 오즈본 지음 | 양상모·김정란 옮김
    심산 | 748·696쪽|각 3만원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가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할 때였다. 기자가 지휘자들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루트비히는 "카를 뵘은 빼어난 지능의 소유자고, 레너드 번스타인은 활기로 가득하며, 오토 클렘페러는 아주 냉정하다"고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카라얀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주저 없이 말했다. "그는 신이에요."

    한글판으로 1440여 쪽에 이르는 이 전기는 20세기 클래식 음악계의 절대군주로 군림했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에 대한 일종의 '왕조 실록'이다. 베를린 필과 잘츠부르크 축제를 장악하고 평생 3300여 차례의 연주회를 열었으며, 1200여 장의 음반과 영상을 남겨 2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이 지휘자에 대한 전기 중에서도 단연 정본(定本)으로 꼽힌다.

    영국의 음악평론가인 저자는 '카라얀의 핵심 측근'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걸맞게 가족과 지인, 주변 인물에 대한 밀착 취재를 통해 카라얀의 음악과 삶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유년 시절 그가 피아노에서 지휘로 전공을 바꾼 이유 가운데 하나가 손가락의 '건초염(腱��炎)' 때문이라든지, 빈 유학 시절에는 전축을 틀고 지휘하는 일에 한참이나 매달렸다는 하숙집 여주인의 증언은 다른 전기에서는 찾기 어려운 기록이다. 카라얀이 21세에 수석 지휘자에 취임했던 울름 시립 극장에서는 수석 바이올리니스트가 단원 세대교체에 항의하기 위해 리볼버 권총을 소지하고 극장 사무실에 난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실록은 명백하게 카라얀의 그늘보다는 빛에 기울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히틀러의 집권과 제2차 세계 대전의 격랑 속에서 카라얀이 나치에 입당했다는 사실에 대해, 저자는 "카라얀의 성격과 개성 속에는 음악적 이상주의와 전문가로서의 출세주의 사이에 분열된 이중성이 있었다"고 애써 변호한다. 어쩌면 저자는 군주를 흠모하는 신하의 시선을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걸지도 모른다.

    카라얀은 오토바이와 비행기, 콤팩트디스크(CD)까지 첨단기술에 대해서는 중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열광적이었다. 반면 정치 사회적으로는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침묵했던 '두 얼굴'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야사(野史)만큼 논쟁적이거나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카라얀의 '두 얼굴'을 차분하게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두말 할 필요가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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